8월 말에 지난 글을 쓰고 거의 한 달 만에 이렇게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 사이 큰딸 내외를 비롯해 거제에 손님이 세 팀이나 다녀갔고, 조카의 결혼식이 송도에서 있어 다녀오기도 했다. 집안이 늘 분주했고, 마음도 바쁘게 움직였다. 이제야 한숨 돌리며 이렇게 글을 적는다. 오랜만에 글을 쓰는 이 순간, 설레는 마음이다.
공자는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했다. 긴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발걸음은 그 자체로 이미 큰 정성과 우정을 담고 있다. 맹자도 멀리서 오는 친구를 맞는 즐거움을 이야기하였다. 옛사람들에게 손님은 단순한 방문객이 아니었다. 그들은 손님을 통해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고, 마음을 단정히 가다듬었다.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에서 거제까지 오는 길은 쉽지 않다. 차로 네댓 시간이 걸리고,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떼어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주는 손님은 그 자체로 반갑고 고맙다. 또 어떤 이는 거제 근처에 왔다가 “생각나서 들렀다”며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 발걸음은 예기치 못한 기쁨을 안겨준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지만 오히려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집에서, 바닷가에서, 산에서, 카페에서, 미술관에서... 어디서든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은퇴이전 동경에 살던 시절에도 손님이 잦았다. 출장길에 일부러 시간을 내 찾아오는 이도 있었고, 관광을 겸해 오는 이도 있었다. 그 자체로 반가운 일이었다. 물론 때로는 난감한 경우도 있기는 했다. 잘 알려진 명소가 아닌, 현지인만 아는 골목길이나 숨어 있는 맛집을 안내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였다.
당시 나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기에 여유가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런 안내를 할 만큼의 지식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내가 현지 사정에 정통할 것이라 기대했고, 나는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까 봐 은근한 부담을 느끼곤 했다. 반가움과 부담이 뒤섞인, 손님맞이의 이면을 체감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경험을 돌아보며, 은퇴 후 거제에 정착한 뒤로는 손님을 맞는 나만의 방식을 차차 만들어 가고 있다. 멀리서 찾아오는 발걸음은 여전히 반갑지만, 때로는 내 집에서 묵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오는 경우가 있다. 서울에서 내가 누군가를 찾아간다고 해서 “우리 집에서 머물라”라고 권유받은 적은 없는데, 정작 내가 사는 집에는 그런 기대를 하고 오는 이들이 있으니 반가움이 작은 부담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원칙을 세웠다. 손님이 오면 먼저 숙소를 예약했는지 묻는다. 필요하면 몇 곳을 추천하기도 한다. 가족 단위라면 지세포의 소노캄, 골프를 겸하거나 자동차가 없어 우리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면 아파트 바로 옆의 거제뷰 CC 골프텔, 시내를 원한다면 삼성호텔이나 가성비 좋은 아르누보호텔을 안내한다. 성수기라 방이 없거나 요금이 지나치게 비쌀 때는 차라리 다른 시기에 오는 편이 낫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린다.
이런 원칙을 세워두니 손님을 맞는 일이 한결 편해졌다. 반가움은 여전하고, 부담은 줄었다. 물론 원칙에도 예외는 있다. 예컨대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 특히 딸 내외가 찾아올 때는 상황이 다르다.
이번 9월, 워싱턴 D.C. 에서 큰딸 내외가 찾아왔다. 오랜 비행 끝에 거제까지 오는 발걸음이니 그 자체로 고마운 일이었다. 우리는 집에서 함께 지내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 사이 짬을 내어 후쿠오카로 며칠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중에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지낼 수 있도록 각자 호텔 방을 예약했다.
집에서 함께하는 시간과 여행지에서 각자의 공간을 갖는 경험이 어우러지니 훨씬 더 즐겁고 풍성한 시간이 되었다. 같은 공간에 오래 머물면 생길 수 있는 피로를 덜고, 함께할 때의 기쁨은 오히려 더 커졌다. 이런 식의 조율이야말로 손님맞이의 새로운 지혜라고 느꼈다.
손님을 맞는 일은 언제나 기쁨과 어려움을 동시에 안겨준다. 기쁨은 멀리서 찾아오는 발걸음 그 자체에서 오고, 어려움은 생활공간과 시간을 조율해야 하는 현실에서 온다. 그러나 작은 원칙과 배려를 세워두면, 부담은 줄고 즐거움은 커진다. 옛 성현들이 말했듯, 손님을 맞는 일은 곧 내 마음을 다듬는 과정이기도 하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손님은 생선과 같아서, 삼 일이 지나면 냄새가 난다(Guests, like fish, begin to smell after three days)'라는 유머 섞인 말을 남겼다. 손님맞이에는 늘 즐거움과 현실적인 어려움이 함께 따른다는 사실을, 솔직하고도 담담하게 드러낸 표현이다. 결국 손님을 맞는 일은 반가움과 곤란함을 함께 안는 일이고, 그 균형을 찾는 것이 은퇴 후 내가 배워 가고 있는 작은 지혜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손님이 오면 반갑고, 손님이 가면 서운하면서도 또한 반갑다. ㅎ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