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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생활 단상 9 – 생각지도 못한 병원 나들이

by 정인성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병으로 병원을 찾게 된다. 나는 은퇴 후 몸 관리를 나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엔 정말 예상 밖이었다. 발바닥이 아파서 병원을 계속 다니게 될 줄은.


요즘은 구두보다 운동화를 훨씬 자주 신는다. 코로나 이후로 정장 대신 편한 복장이 일상이 되었고, 나이 들어가면서는 발이 편한 게 최고라는 생각이 더해졌다. 이번 9월에 손님들이 와서 함께 이곳저곳을 많이 걸어 다녔다. 편한 운동화를 신었지만 발이 좀 피곤함을 느꼈다. 이에 더해 결혼식 참석과 발표 일정이 겹쳐서 오랜만에 구두를 몇 시간씩 신게 되었다. 하이힐을 신은 내 모습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기분이 꽤 업되었다. ‘아직 괜찮네’ 하며 스스로 뿌듯해했는데, 문제는 그날 이후였다.


며칠이 지나자 오른쪽 발바닥이 찌릿찌릿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피로하겠거니 했다.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어서 참고 지냈다. 그런데 잠결에 화장실 갈 때나 아침에 침대에서 내려올 때, 발을 딛는 순간 너무 아파 깜짝 놀랐다. 찾아보니 족저근막염일 가능성이 높단다. 설마 싶었다. 하지만 증상이 하나하나 맞아떨어졌다.


족저근막염원인.jpg 족저근막염이 왜 생기게 되며, 간단한 자가 진단은 어떻게 하는가가 나와있는 병원 브로슈어이다. 유용하다.


생각보다 흔한 병, 생각보다 붐비는 병원

결국 거제 시내 고현동의 한 정형외과를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초기라 그런지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의사는 단번에 말했다. ‘증상으로 보면 족저근막염이 확실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앗, 나에게 생각지 못한 이런 병도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놀란 건 병원 풍경이었다. 평일 늦은 오전인데도 대기실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세 명의 의사가 진료 중인데도 줄은 줄어들지만 새로운 환자들로 곧 채워졌다. 물리치료실에는 수많은 침상이 줄지어 있었고, 거기에서도 긴 줄이 있어서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가 아픈 걸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싶어 이상하게 안도도 되었지만.


의사 말로는 초기라서 다행이지만, 완전히 낫는 데는 1~2달쯤 걸릴 거란다. 그동안은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으며, 매일 스트레칭과 발 운동을 해야 한단다. 약도 병행하라고 했다. 현재 일주일째,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지만 여전히 조심스럽다. 걷기와 근력운동, 스트레칭은 이어가되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 아플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스트레칭.jpg 벽밀기와 족저근막 스트레칭을 매일 하니 큰 도움이 되는 듯해서 평소에도 하려고 한다. 유튜브에 정형외과 의사분들이 올려주신 스트레칭 법들이 상세히 나온다. 고마왔다.


다행히 거제는 생각보다 병원이 많다. 종합병원만 세 곳, 여러 명의 의사가 함께 진료하는 정형외과와 내과, 치과, 안과가 시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피부과나 이비인후과, 성형외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정말 피부 문제가 생겼을 때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피부과나, 여성이 안심하고 갈 수 있는 산부인과는 조금 부족한 듯하다. 그래도 인구 24만 명이 안 되는 도시에서 이 정도면 불평할 일은 아니다. 큰 병 없이 지내려면 결국 스스로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예방주사 제때 맞고, 음식을 가볍게 하고, 운동은 꾸준히 하되 무리하지 않는 것. 그게 은퇴 후 건강의 기본이자, 병원에 오래 머물지 않기 위한 작은 지혜일 것이다.


병이 주는 뜻밖의 깨달음

이번 일을 겪으며 새삼 느꼈다. 그동안 발톱 관리는 하면서도 정작 발의 기능적인 부분 ― 발바닥, 발가락, 아치(arch) ― 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족저근막염이 생기고 나서야 발이 우리 몸의 기초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 발 스트레칭을 한다. 의사 말처럼 아침에 일어나기 전, 침대 위에서 발가락 부분을 꺾어 발바닥을 마사지해 주거나, 종아리 스트레칭, 수건을 이용해 발바닥을 당기는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또, 많이 걷는 것보다 ‘어떻게 걷느냐’가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이제는 바닥이 너무 딱딱하지 않고, 아치를 잘 지탱해 주는 운동화에 더 신경을 쓴다. 그동안 아쉬워서 간직해 온 하이힐은 없애고, 젊은이들이 많이 신어서 부러워서 산 예쁜 샌들은 이웃에게 주었다. 실내화도 발 건강을 생각해 새로 구입했다. 작은 변화지만 확실히 다를 것을 기대하면서…


신발장.jpg 신발장에 대부분이 운동화로 채워져 있다. 그래도 몇 개의 구두는 아직 포기 못하고 간직하고 있다.


발은 늘 우리를 지탱해 주지만, 막상 그 고마움을 느끼는 일은 드물다. 이번 경험으로, 발이 보내는 신호에 조금 더 귀 기울이게 되었다. 은퇴하신 분들이라면 지금부터라도 발 운동과 스트레칭을 꼭 시작하시라 권하고 싶다. 운동화 한 켤레, 그리고 10분의 시간만으로도 발은 훨씬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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