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태수, 페이지2북스, 초판 13쇄(2024.12), 초판 1쇄 (2024.11)>를 읽었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연둣빛 스케치북 표지의 책이다. 한 달 만에 13쇄를 찍은 책인데 작가의 이름 태수는 언젠가 어렸을 유년 무렵에 한 번은 짝이었을 것만 같이 친근했다. <1cm 다이빙, 2020>을 썼을 때 태수 님은 작가라고 불리는 것을 아직 꺼렸다. 작가란 글을 만들면 이미 작가인데.
이 책은 모든 스케줄이 사라진 날의 오후에 나와 만났다. 어쩌면 나의 그 소소한 스케줄도 이 책을 읽기 위해 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4개의 꼭지에 빼곡하게 본인의 근황을 전하고, 너는 좀 어떠냐고 위로하고, 아무튼 그냥 힘내보자는 수다쟁이를 만난 느낌이 드는 책이다. 마음을 위로하는 문장들이 많아서 옮겨 적어보았다.
독일어에는 '치타델레(Zitadelle)'라는 말이 있다. 요새 안의 작은 보루라는 뜻으로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작은 방을 의미한다.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 고립된 공간 속에서만 남들에게 수도 없이 제공했던 말을 자신에게 들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27쪽
나는 행복에 틀이 없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멀잖아.' '비싸잖아.' '힘들잖아.' 매 순간 해야 할 이유보다 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아니라, 가끔은 길을 잃을 줄도 아는 사람들을 말이다. 이들의 말투에는 삶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담겨 있어 마른 내 심장도 두근거리게 한다. 102쪽
미련해서 꾸준한 게 아니라 흔들리지 않아서 꾸준할 수 있다. 무언가를 남겨야 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에 열심히 산다. 그렇기에 꾸준함이란 미련함이 아닌 단단함이다. 요란한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내 삶을 사는 튼튼한 태도다. 169쪽
결혼이란 한 사람과 비정상적으로 가까워지는 걸 의미한다. 일주일에 한 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카페에 들러 기분 좋게 바이바이 하는 관계가 아니라, 매일 아침 부은 얼굴을 보고 쌓여 있는 설거지 때문에 다투기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은 일탈이 되는, 그런 삶을 말한다.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 그러나 집에 갈 수는 없다. 거기가 우리 집이기 때문이다. 194쪽
쉬어야 할 때 쉬지 않으면 정작 뛰어야 할 때 쉬게 된다. 그러니 다 쓰러져가는 나를 위해, 매일같이 지쳐 사는 나를 위해 부디 한 시간에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종을 울려 주자. 어린 날의 학교처럼. 지금은 쉬라고. 지금 쉬지 않으면 분명 수업 시간에 졸 거라고. 123쪽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짜릿함보다는 안도감에, 특별함보단 일상적임에 더 가깝다.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이 조용한 하루들은 우리 인생의 공백이 아닌, 여백이니까. 228~229쪽
오늘 반나절 동안 태수 작가의 얘기를 읽었다. 오늘 같은 휴일에도 오후 3시가 넘으면 오늘의 주요 일정이 모두 끝나가는 느낌이 든다. 공휴일에도 다를 바 없다. 좋은 말을 가득 담았고 나는 곧 이곳을 떠날 것이다.
고요한 나만의 시간에 예쁘고 산뜻한 태수 작가의 생활, 사랑, 불안과 할머니와 예전 얘기를 들었다. 쓰는 일이 하고 싶지 않다는 고백도 별일이 없어 평범한 날에 대해 고요함이 내 마음에 닿았을 때는 물기처럼 마음에 스몄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어른이란 정말 나이와는 상관없음을 느꼈다. 어쩌면 어른스럽던 유년의 날에 이미 다 커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의 얘기를 담담하게 할 수 있으면 이미 어른이다.
알 수 없는 불안함, 예견되는 어려움과 같은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해 담담할 수 있다면 어른이 된 것이다. 굳이 들썩이며 드러낼 필요와 이유가 사라진 행복은 고요하게 일상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