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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처음 가는 길>의 마지막 출간 모임

by 김영신

홍대 입구 연남동에는 캐리어를 끈 외국인들이 경의선 숲길에서 각자의 언어로 무엇을 떠들고 있었다. 낯선 언어는 의미 없는 소음이 되어 여전히 서늘한 바람을 타고 쉴 새 없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내는 소리의 의미를 알지 못하자 허공에 발을 딛고 걷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걸으면서도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다급함과 내가 도착해야 할 목적지가 있다는 안도감이 섞였다. 사실 그 목적지에는 어떤 시작을 마치려는 목적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나의 목적지는 함께한 작가님들이다.


연남동 고유라운지로 가는 길에는 자목련 나무가 건물 사이에 피어있었다. 홍대입구역에서 경의선 숲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왼쪽 골목길로 들어서서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만나는 나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좋아서 이번 주 나의 유일한 휴일의 시간을 모두 내어놓았다. 자목련을 만날 줄은 몰랐기에 나는 나무 아래에서 잠시 멈췄다. 나는 사실 백목련보다 자목련을 좋아한다. 자목련 한 그루 앞에서 나는 봄날의 선물을 받아 안은 느낌으로 몹시 행복해졌다.

봄꽃처럼 짧고 강렬한 꽃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쩌면 봄이 짧고 봄비가 거세게 내리는 날이 많아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것일 것이다. 라운지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담 위의 봄꽃들이 살랑이며 방긋 웃어주었다. 나는 이 꽃들을 보려고 연남동을 걸어 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꽃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다가 만나기로 한 시간에 겨우 맞추어 라운지로 들어섰다.

글을 쓰는 사람이 만든 공간에는 책이 가득하지만, 어떤 미래적인 가능성의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이곳을 언제 또 방문하게 될지 모르지만, 몇 번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친근한 입구에서도 아주 잠시 머물렀다.
라운지에서 서로 나눈 세 시간 동안은 해가 지는지도 모르도록 빠르게 흘렀다. 출판 얘기, 챗GPT의 진화, 20대들의 생각, 종이책의 미래, 작가로서의 정체기 등과 같은 얘기를 듣고 나누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보내는 한마디 말을 면지에 적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인근에서 소소한 저녁을 먹고 레트로 감성의 옛 팝송이 흐르는 카페에서 늦은 음료를 마시고 헤어졌다. 나는 동료 작가들과 책을 함께 쓰는 이런 기회가 어쩌면 다시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한 뼘씩 달라졌고 계속 변화하고 있으며 다시는 뒤로 돌아갈 수 없는 글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4월은 아직 쌀쌀하고 벚꽃은 무심하게 피어 흰 꽃잎을 떨구었다. 생각해 보니 나야말로 글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봄꽃만을 기다리며 겨울을 지냈다. 글이 새 글을 퍼 올려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은 마음속에나 있는 것이었다.
책을 쓸 수 있어서 좋았고 여럿이 함께해서 좋았고 마침내 책을 받아 안고 좋았던 시간이 끝났다. 모두가 모일 수는 없었고 모일 수 있는 작가님들이 모여 출판 관련 중요 얘기를 듣고 나누고 그렇게 헤어졌다.

달이 뜨고서야 우리는 곧 헤어질 사람들이 되어 소금빵 굽는 냄새, 호떡 냄새가 풍기는 연남동을 걸어 나왔다. 아쉬운 인사를 뒤로하고 나는 일산으로 향하는 전철을 탔다. 곧 색연필 그림을 예쁘게 그리며 여전히 동화책을 쓰는 도란도란 작가님과 창원에서 올라오신 나르샤킴 작가님에게서 받은 에너지가 나를 감쌌다. 글이란 결국 쓰는 자의 것이고 발행하는 자의 기록이다. 거창하지는 않아도 지속적으로 걸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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