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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학자 앙리 파브르의 초록색 시학

by 김영신

앙리 파브르가 자연을 아끼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초록색 시학

<위대한 관찰, 조르주 빅토르 르그로, 김숲 옮김, 휴머니스트출판그룹>을 읽었다. 파브르는 곤충기로 유명한 학자인데 단순히 곤충을 연구한 학자라고만 알고 있었다. 파브르에 관한 이 책을 읽으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마음이 향하는 일에 흔들림 없이 전진하는 한 인간의 삶을 보았다.

이 책에는 자연을 아끼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초록색 시학이라는 멋진 부제가 붙어있다. 지은이는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의사이며 앙리 파브르의 제자인 조르주 빅토르 르그로이다. 그는 앙리 파브르의 말년을 함께 보냈다고 한다.

책의 시작에 파브르가 직접 보내는 서문이 마치 편지처럼 나타난다. 파브르는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았으며 자연에 존재하는 삶과 죽음의 흐름을 우주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이 말하는 평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숲은 겉보기에만 평화롭다는 것과 인간이 생각하는 잔혹함이란 곤충의 생태에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파브르는 진보의 연속성을 단언했다. 더 조화롭고 덜 잔인한 규범에 지배되는 더 낫고 덜 잔인한 미래, 더 완벽한 인류애를 믿었다. 우리는 음식에서 나오는 에너지 말고는 다른 에너지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 식물은 토양과 대기에서 양분을 얻으며, 햇빛은 식물이 탄소를 고정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매개체일 뿐이다. 동물종은 식물 세계에서 생존에 꼭 필요한 원소를 빌리거나 다른 동물의 살과 혈관을 살점과 피로 다시 채워 넣는다. 226쪽

햇빛으로 영양분을 공급받는다면, 전쟁 없이, 노동 없이, 모든 걱정에서 벗어나고 모든 필요가 반드시 충족될 것이다! 이처럼 이처럼 파브르는 가장 놀라운 관점으로 가장 소박한 생명체를 바라봤다. 아주 하찮은 곤충의 몸이 갑자기 초월적인 비밀이 되어 인간 영혼의 심연을 밝히거나 별을 엿보게 했다. 비록 파브르의 연구는 진화론자의 이론과 모순되지만, 모든 창조물은 점진적인 진보를 향해 쉬지 않고 천천히 움직인다는 똑같은 교훈적 결론으로 끝난다. 227~228쪽

파브르는 늘 그 어떤 것보다 배움의 기쁨을 우선했기에 죽은 다음에도 하늘로부터 자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가득한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는 것보다 더 큰 보상은 없다고 생각했다. 256쪽

파브르의 머릿속에는 고대 철학자로 가득했다. 청년기와 중년기에는 그다지 자주 읽지는 않았지만, 결국 고대 철학자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과학과 인문학은 경쟁자가 아니라 동맹자라고 생각했다. 324쪽

나이도 파브르의 용기나 활력을 죽이지 못했다. 파브르는 거의 아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똑같은 열정으로, 마치 영원히 살 운명이라도 되는 양 열정적으로 계속 일했다. 비록 육체적인 힘은 쇠약해졌고 팔다리는 후들거렸지만, 두뇌는 온전히 남아 배추벌레와 북방잔딧불이에 관한 연구의 마지막 결실을 보았다. 332쪽

곤충은 감정을 갖지 않으며 존재함으로 빛난다. 한 여름날 밤의 며칠 동안에 번식하고 사라지며 먹고 먹히는 곤충의 생태에 대해 탄식할 필요는 없다. 사마귀 사냥방식의 잔인함과 곤충이 죽어가며 내어준 몸이 분해되고 해체되어 다른 곤충의 먹이가 되는 한 여름밤의 사냥은 곤충의 크기만큼이나 작고 은밀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생존의 처절함이 결코 작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생명의 선순환만을 생각하려고 한다. 왜 그럴까를 따지고 들자면 그저 주어진 온갖 거저 얻어진 것에 대해서도 따지고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파브르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인생사와 그의 과학에 대해 조금 읽은 것인데, 한 분야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우주적인 넓이로 커진 위대한 철학자를 만난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자연 과학을 공부하는 이와 특히 곤충과 같은 작은 생명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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