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이해가 마음과 닿을 때 일어나는 인식의 거대한 작용에 대하여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 파코 칼보, 하인해 옮김, 휴머니스트출판그룹, 2025>를 읽었다. 식물에서 발견한 새로운 지능의 미래라는 부제가 붙어있었다. 지은이 파코 칼보는 스페인의 과학철학자이며 국제식물신경생물학 연구소장이다. 지능에 대한 이해에 이바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각 3개씩의 주제가 담겨있다. 지능의 관점에서 본 식물, 과학적 관점의 식물 지능과 식물 지능과 미래와의 연결이 지은이 파코 칼보의 이야기로 쓰여있다.
그는 인간이 세상에 대한 담론을 개별적 경험을 기반으로 결론지으려는 성향에 대해서 이에 따라 인간이 지혜롭기는 하지만 편협할 수도 있다는 점을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이 과학철학자가 말하고자 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책의 표지에 있는 초록의 존재인 식물의 지혜에 대해서.
지은이는 식물의 생화학적 연결고리와 지능에 관한 질문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식물을 이해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극적으로 변한다."라는 것이다.
뿌리가 식물의 머리이고 녹색 부분들은 둔부로 생각해야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식물의 뿌리계는 감각기관이 모여있는 동물의 머리처럼 환경의 다양한 측면을 인지하고 식물의 다른 나머지 부분들에 어떤 활동을 할지 지시한다. 한편 잎과 꽃은 동물의 소화기관처럼 양분이 될 햇빛을 흡수하거나 자세히 비유하지 않아도 알 수 있듯이 교배 같은 좀 더 원초적인 면들을 담당한다. 식물을 뿌리 때문에 옴짝달싹 못 하는 잎들의 정적인 집합이 아닌 땅에 거꾸로 선 지능을 지닌 유기체로 여긴다면 식물을 조금이나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56쪽
식물의 지능을 이해하려면 다윈이 그랬듯이 식물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파리지옥이 입을 순식간에 닫아버리거나 미모사가 잎을 접는 것처럼 맨눈으로도 쉽게 볼 수 있는 운동 이상을 보아야 한다. 사실 식물에서 성장하는 모든 부분은 정적이지 않다. 72쪽
우리는 개별 식물들과 그 주변 세계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본질과 연결되어야 한다. 애니미즘에 기대지 않고 식물을 깨어있는 존재로 인정하고 식물에 대한 의인화를 지양함으로써 지능에 관한 인간 중심적 헤게모니에서 벗어나야 한다. 96쪽
우리 자신이 다른 존재의 고통을 고민하는 존재라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모든 유기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식물이 의식을 지녔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식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는 노력이면 충분하다. 이는 장기적으로 인류 모두를 위한 것이다. 308쪽
나는 화분 식물 몇몇과 함께 지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저 물이나 잊지 않고 주면 된다고 생각한 편협한 식물 집사였음을 아프게 깨달았다. 나는 식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더 알고 싶지도 않았다. 식물이 곁에 있어 초록이 주는 위로를 얻고자 한 이기적인 식물 집사인데 막상 식물의 고통까지 연결되는 책의 내용에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식물을 의인화하거나 은유로 대해오던 관점은 사람의 인문학일 뿐이다. 식물을 대하는 방법 자체마저 완전히 다른 접근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만 같기도 했다. 이를테면 223쪽의 이런 문장에서다. "우리가 다른 대상을 의인화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방법을 탐구하며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한 식물로 존재하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한 열쇠는 신경생물학에 대한 완전한 이해이며,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는 우리에만 집중하던 편협한 직감에서 벗어나 어두운 세상에서 음파로 세상을 보는 박쥐나 공가 중 햇빛이나 토양 속 무기물을 향하는 식물처럼 다른 종류의 의식으로 주변을 상상해야 한다."
내 식물의 머리 부분인 뿌리를 지탱하는 흙에 너무 무심했다. 분갈이를 제대로 해주지도 않고 물만 성실하게 주었다는 것이 미안해졌다. 식물이 인간에게 유익한 존재라는 의미만을 생각하고, 식물 존재 자체의 생명에 대해 떼어서 생각하지 못한 것은 마치 가축을 길러 먹잇감으로만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렀다. 육식을 즐기지 않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편안하게 생각한 이후에도 생명 존재 자체의 의미를 이해하는 지평은 고난도의 메타 인지력이 필요하다.
이 책의 끝 312~312쪽에서 나는 비로소 지은이가 하려는 속의 말을 읽었다. "생각을 가두는 껍데기를 깨려면 "상자 밖, 선과 선 사이, 지평선 너머"에서 생각하라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X선 결정학 연구자인 리처드 액설의 당부를 떠올려볼 수 있다. 생각의 새로운 방식, 존재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려면 우선순위를 바꿔야 할 것이다. 새로운 질문들을 받아들이며 우리와 함께하는 존재들은 본질을 상상해야 한다. 식물의 지혜로부터 우리 자신의 마음이 지닌 본질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을 발견할 것이다. "
받아들이는 것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보통 어린 학생들이다. 유연하고 섬세하며 맑아서 젊은 그들에게 마치 숙제처럼 제시하는 이런저런 명제의 질문을 할 때마다 미안해지곤 한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도 늘 조금 큰 틀에서 생각하기를 주문한다. 살아있으므로 여전히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고 전환할 수 있으며 기다리는 힘을 갖고 있음을 확신해 본다.
이 책은 인류의 미래를 예견하고 싶은 사람과 공부하는 사람들, 과학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과 특히 식물과 철학에 관심이 있는 이가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