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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영화 이야기

by 황종하

나도 한때 춤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마이클 잭슨이 한창 유행을 하고 있었고 친구들 몇 명이서 모여서 브레이크 댄스를 연습하곤 했었다. 공부 못하는 애들의 방과 후 활동이다. 그러다 Flashdance(1983)라는 영화를 봤다. 지금 년도를 보니까 중학교 때였나 보다. Jenifer Beals의 근육질 몸매와 청순한 이미지가 너무 매력적인 영화였다. 그녀는 낡은 창고에서 살며 퇴근 후 혼자 몸을 풀며 춤연습을 한다. 허름한 곳에 살아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삶이 부러웠다. 이 영화는 지금 봐도 가슴이 설렌다. 나도 저런 여자랑 사귀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국현실에서 춤 잘 추는 여자는 대부분 나이트클럽 죽순이(?)이거나 날라리라는 사회적 편견이 있었다. 그런 여자를 내가 가까이서 만날 기회도 없었고 설사 만난다 하더라도 영화처럼 로맨스에 빠지는 일은 거의 없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소개받은 여자가 춤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 사실하나만으로도 그녀에게 매력을 느껴서 만난 적이 있다. 아쉽게도 그녀의 춤추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자신은 클럽 가면 남자는 신경 안 쓰고 춤만 춘다고 했다. 난 춤도 추고 여자도 신경 썼다. 20살 때부터 이태원 나이트클럽에 다녔다. 비바체라는 곳과 오딧세이라는 성인 나이트클럽에 대학 1학년 생이 출입을 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곳이었다. 거기는 성인 나이트클럽이라 여대생들이 오는 곳이 아니었다. 부킹을 하기엔 난 너무 촌스러웠고 어렸다. 친구랑 가면 그냥 춤만 췄다. 새벽 3시까지 땀을 흘리며 춤을 추고 나와선 포장마차에서 파는 국수를 먹고 집에 가곤 했다.


그해여름 Dirty Dancing(1988)이란 영화가 나왔다. 친구들과 신촌에 가서 같이 영화를 봤다. 남자주인공 Patrick Swayze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나도 저런 남자가 되어야지. 하지만 현실에선 나는 기계공학 공부하는 공돌이였다. 겨우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나이트클럽에 가서 근본 없는(?) 춤을 추는 것뿐이었다. 대학은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었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둘째 누나가 영극영화과를 지원하고 아버지한테 혼나는 걸 옆에서 경험한 나로서는 감히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할 게 없어서 그래 딴따라를 하냐?"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었다. 누나는 고집대로 밀어붙였고 졸업해서 정말 월급도 못 받는 대학로 극단에서 연극을 했다. 그 극단이 김민기 씨가 운영하던 학전이라는 곳이었다. 춤과 영화에 대한 나의 꿈은 자연스레 묻히게 되고 난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기대되로 대기업에 취업했다.


세상에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 직장인의 삶을 살았다. 그래도 나의 본질 속에 있는 딴따라의 기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화 White Night을 보면 Mikhail Baryshnikov와 Gregory Hines가 탭댄스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Yotube도 없던 시절에 나는 이 영상을 거의 기억할 정도로 반복해서 봤고 집에 아무도 없으면 마루에서 나 혼자 탭댄스를 연습했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비디오만 보고 따라 했다. 온몸에 땀이 날 때까지 추다 보면 마치 날아갈 것 같았다. 춤은 답답한 나의 현실을 잊게 하는 탈출구가 되었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날라리의 헛된 바람일 뿐이었다.


Billy Elliot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영국의 로열발레단 심사위원이 Billy에게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춤을 배워 본 적이 없는 빌리는 발레대신 자신이 동네에서 추던 막춤(?) 같은 걸로 오디션을 봤다. 본인은 당연히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돌아서는데 그때 그가 한 말이 나는 너무 공감이 됐다. "What does it feel like when you are dancing?" He said "I don't know... once I get going I forget everything.. sort of disappear.. fire in my body... flying like a bird" 그리고 훗날 그는 유명한 발레리나가 된다. 이 영화는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어렵게 꿈을 이루는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아마도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루지 못한 꿈은 그냥 사라지지 않고 여러 가지 형태로 삶에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영화감독의 꿈은 대신 가족영상을 만드는 걸로 대체되었고 춤대신 축구를 하거나 농구를 하면서 살게 되었다. 그래서 춤 잘 추는 사람을 보면 항상 부럽다. 영화 Scent of a Woman을 보면 알파치노가 탱고를 추는 장면이 나온다. He said "There is no mistake in tango, not like in life." 너무 아름답고 우아한 장면이다. 영화 Shall We Dance에 보면 리처드 기어가 멋있는 볼륨댄스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년의 나이에도 춤에 대한 꿈 때문에 퇴근 후 댄스학원에 다닌다. 나도 댄스 학원에 다니까 생각을 해았지만 사는 게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이제 애들이 대학에 가서 학원을 다녀도 되겠지만 이 나이에 학원문을 두드린다는 게 쉽지 않다. 요즘은 대신 다른 꿈을 꾸며 산다. 작가가 되는 꿈. 노래하는 꿈. 축구선수가 되는 꿈. 골프선수가 되는 꿈. 기타리스트가 되는 꿈. 할 게 너무 많아 춤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저 춤추는 사람을 보면 잠시 부러운 듯 바라보며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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