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을 감수하는 결단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 최근 며칠 동안 여러 명의 여성을 만났다. 한국에서 결정사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종종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미국에 사는 나로서는 무척 생소한 일이다. 12:45분을 비행으로 날아온 다음날부터 약속이 잡혀있었다. 주중엔 좀 쉬어가고 주로 주말에 만남이 이루어졌다. 만나본 여성들이 다 마음에 들었다. 다들 너무 똑똑하고 외모가 훌륭하다.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거나 자신의 매력자산을 잘 관리해 온 준비된 신붓감들이다. 20 ~ 30대 여성들과는 달리 한번 경험이 있거나 때를 놓친 여성들이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이고 마음의 준비가 잘되어있다. 내가 어떤 남자를 만나길 원하는지 어떤 남자는 걸러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영양가 없는 연애로 젊음을 소비해 버린 경험들이 있으며 이제는 자신들에게 남은 시간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걸 인식하며 이제는 뭔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남자와 관계를 시작하고 싶어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거라는 생각은 그들에게는 이미 철 지난 조언이다.
여성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남자의 경제적인 능력을 반드시 고려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남자의 가치관 사고방식, 세계관이 어떤지 알기 원하며 외모보다는 인성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낭만적인 사랑의 관계를 갈망한다. 그녀들의 사랑에 대한 기대치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자들보다 훨씬 높다. 중년의 나이에 재혼하는 남자는 사랑타령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여자들은 다르다. 사랑하는 남자와 남은 평생을 보내고 싶어 하는 꿈이 여전히 강하며 섹스보다는 정서적 친밀감을 중요시한다. 그렇다고 그녀들이 섹스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는다. 남자들과 달리 그녀들에게는 사랑이 우선이다. 이런 점에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여러 수 위에 있다. 그녀들이 삶을 사랑하는 강도와 그들의 바람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남성들보다 훨씬 강하다. 그들은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하고 있으며, 자산관리도 하고 있고, 특히 운동을 통해서 자신의 건강과 몸매를 관리한다. 돈만 있으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배 나온 중년의 남자들과는 수준이 틀리다. 이런 여성들과 데이트를 하고 그들의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선 난 그들을 이해하고 배워야만 한다.
요즘은 여성작가들의 에세이를 많이 읽는다. 이혼하고 애를 키우면서도 작가로 성공한 여성들이 꽤 많다. 그들의 이혼이야기, 이혼 후 생존이야기, 이제는 많은 걸 극복하고 어떻게 자신이 주체적으로 설 수 있었는지에 관한 고백들이 글 속에 묻어 있다. 이제는 세상을 여성들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하고 싶다.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고 싶다면 요즘 사랑을 원하는 여성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아야만 한다. 나도 그들만큼 각성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난 그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없고 그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 낭만이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낭만과 더불어 현실을 직시하고 해결해야 사랑을 얻을 수 있다. (Realistic Romanticism)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만남과 결혼이라는 과제는 결국 어떤 결단을 요구한다. 주어진 길지 않은 시간 속에 한 사람을 결정해야 만한다. 주어진 정보는 많지 않다. 살아보기 전까지는 어떤 사람인지 다 알 수가 없다. 이런 Unknown상태에서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내 삶을 걸고 도박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미국에서 온 남자이고 (A Man from California) 그녀들은 다른 나의 조건들을 고려하여 나와 나머지 인생을 같이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나는 그녀들이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주고 나 자신을 홍보하며 어필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선택한 여자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들은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
여자 입장에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이는 커리어 단절이라는 위험과 직장상실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 남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한다. 나는 그녀들에게 미국에서 은퇴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청사진을 보여주어야 한다. 경제적 안정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그동안 일하느라 하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조금씩 펼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도 실감 나지 않겠지만 내가 제안하는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이 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를 선택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녀들에게는 낯선 미국땅으로 이사해서 살아야 한다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미국은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가까운 나라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은 미국에 와본 적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짧은 여행 정도이다. 유학을 하거나 일을 하면서 1년 이상 살아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그녀들에게 결혼이라는 선택과 동시에 미국으로 거주지를 옮긴다는 건 직장생활로부터의 해방인 동시에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인 것이다.
이 낯선 땅으로의 이주라는 결정을 좀 더 생각해 보자. 모든 이민자들은 이런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다. 내가 유학을 선택했을 때 나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한국에서의 직장을 포기하고 가족들을 떠나며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말도 잘 안 통하는 나라로 나는 떠났다. 미국은 이런 결정들을 내린 사람들끼리 모여서 만든 나라다. 백인들은 남들보다 먼저 이 낯선 땅으로 이주했고 서부까지 개척한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지금 미국땅의 주인처럼 행세를 하고 있다.
한국의 여성들이 미국으로 이주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불안과 위험이 있겠지만 백인들이 처음에 이 땅에 정착했을 때 보다 훨씬 쉽다. 거기다 결혼해서 같이 살 남자도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도 되어있는 상태에서 고민한다는 건 서부개척을 한 여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소로운 일이다. 인생의 중반에서 모험과 도전을 선택하는 자만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나는 그녀들이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안도감과 확신을 주어야만 한다. 무엇보다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어야만 한다. 나로서도 이런 결단이 없으면 쉽게 누구 하고도 진지한 관계를 시작해서는 안 된다. 연애도 중간에 헤어지면 아픔이 되는데 결혼과 미국이주라는 중대한 선택에 있어서 중도에 포기란 없어야 한다.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힘든 갈등이 발생하면 어쩔 수 없다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아무 일도 시작하면 안 된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국인들은 상당히 높은 문화 수준과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 스스로는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미국과 한국을 다 살아본 나로서는 한국사람들의 문화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은 땅이 작다라는 사실이다. 마치 아름답고 싱싱한 물고기가 작은 연못 안에 살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은 여기에 비하면 커다란 호수와 같다. 물고기가 더 빠르게 헤엄칠 수 있고 자유롭게 여기저기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물고기는 더 성장할 수 있다. 한국은 성장하고 싶은 여성에게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한을 가하고 있는 듯하다. 여성들은 열심히 노력하지만 여전히 불리한 위치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남자랑 미국에서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해 보는 건 분명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나는 어떤 만남을 해야 하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여성을 만나지 않는 시간에는 호텔에 머물면서 책을 보거나 운동을 하며 만남에 최적한 상태로 나가려고 컨디션을 조절한다. 그리고 만나는 시간 동안은 최선을 다해 대화하고 나를 드러내며 상대를 알아가려고 한다. 나도 사랑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두 번이나 결혼을 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 결혼은 필요한 과정일 뿐 목표는 아니다. 중년의 나에게 사랑이 다시 찾아올지 또 그 사랑을 내가 잘 지켜낼 수 있을지 생각하며 오늘도 예정돼있는 만남에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