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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긴긴밤

아름다운 소리가 만들어내는 앙상블

by 까만곰

루리 작가의 긴긴밤을 처음 만난 건 온라인 낭독회였습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지만 제대로 읽어 본 적은 없던 책이었죠.


'소리를 켜두고 밀린 집안일이나 해야지.'

가벼운 마음으로 듣기 시작한 이야기. 낭독 소리에 집안일을 하던 저도, 옆에서 장난을 치던 아이들도 스피커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긴긴밤을 읽는 소리에 자꾸만 귀를 기울이게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책이 어딨 더라?"

낭독을 듣던 아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긴긴밤 책을 찾으러 부산스럽게 움직였습니다. 어디선가 책을 찾아와서는 낭독 소리에 따라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락, 사락."

낭독가의 목소리와 사락거리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기분 좋은 리듬을 만들어 냈습니다.

"새근, 새근."

이야기를 듣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버린 딸의 숨소리까지 더해지니 한 편의 앙상블 연주 같았습니다.


노든의 힘겨운 삶도, 알을 지키기 위한 치쿠와 윔보의 노력도, 작은 아기 펭귄의 성장도, 낭독가의 목소리로 만나니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날 밤 우리 가족을 포근하게 감싸주던 긴긴밤, 오늘은 제가 누군가의 밤을 따뜻하게 채워주고 싶습니다.


이제 저의 낭독을 시작하겠습니다.


'버려진 알'




휴...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내 순서가 끝났다. 이어지는 낭독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이젠 맘 편히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퉁퉁 부은 얼굴로 울면서 나타난 딸.

"엄마, 나 어떻게요? 너무 간지러워요."

다리, 배, 등, 옆구리, 목, 눈두덩이, 코, 입 주변까지 부풀어 오른 딸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하필 오늘? 이 시간에 갑자기?'


"언제부터 그런 거야?"

"몰라요, 학교에서 급식 먹고 그랬나? 학원에서도 간지러웠던 것도 같고. 방금 샤워하고 긁었더니 그런가 봐요."

"혹시 평소에 안 먹던 음식 먹었어?"

"점심에 순댓국이요? 학원에서 배고파서 선생님이 주신 아몬드 초콜릿 하나 먹었어요. 집에서는 빵이랑 우유 먹었는데."


알레르기가 없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당황스러웠다. 붉게 부어오른 곳이 간지럽고 뜨겁다는 딸.

"엄마, 어떻게 해요? 나 내일 학교 못 가요? 학원 수업 가고 싶은데."

간지러워서 못 견디겠다면서 학교, 학원 걱정을 하고 있으니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낭독회 내내 엄마를 불러대는 딸. 아무래도 그냥 잠들긴 어려울 것 같았다.

"옷 입어, 병원 가자."


마지막 낭독이 끝나고 부랴부랴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 다행히 남편이 있는 날이라 병원에 가기 수월했다. 응급실 진료받고 주사 맞고 밤까지 여는 약국을 찾아 약을 받았더니 한밤중. 딸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잠이 들었다.


"와, 오늘 하루 정말 길다."

"그러게, 정말 긴긴밤이다."


어린 펭귄을 돌보던 노든의 밤도 쉽지는 않았겠지?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은 날도, 막막해서 눈앞이 깜깜한 날도 있었을 테다.


두 달간 낭독으로 진하게 긴긴밤을 만나서일까? 고단한 오늘의 하루가 고맙고 소중하다.


"딸 옆에 있어줄 수 있어서, 바로 병원에 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에 병원에 데려다준 남편도, 동생 아프다고 혼자 잠자리에 든 아들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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