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4. 맛과 웃음 사이에서

직업이 요구하는 표정

by 김지윤

'감정노동자'는 특정 직업군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로 하루를 버티는 상담사분들, 미용실에서 고객의 기분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디자이너불들, 아이들의 천 가지 감정을 품어내는 보육교사분들 모두 같은 무게를 안고 계신다. 행정 창구에서 지친 표정으로 서류를 내미는 시민을 맞이하시는 공무원분들, 그리고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쁘게 뛰어다니는 음식점 직원분들까지 모두 '감정노동자'이다.


그분들의 얼굴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된 표정이 있다. 바로 웃음을 준비하는 얼굴, 마음속의 피로를 감춘 채 예의를 담아내는 얼굴이다. 그것은 직업이 요구하는 표정이기에, 종종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느껴질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 많은 얼굴 중에서, 한 끼의 식사와 함께 미소를 내어주는 음식 서비스 노동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누군가의 허기를 채우면서도, 자신의 마음은 비워둘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 경험과 생각을 빗대어 최대한 담담하고 솔직하게 풀어보려 한다.


점심시간의 음식점은 작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소리 없는 전투 지다. 쉴 틈 없이 울리는 벨, 주방에서는 칼과 불이 춤을 추고, 홀에서는 종업원불들의 발걸음이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 모든 것을 감싸 안고 종업원들은 언제나 같은 한마디로 시작한다.


"어서 오세요."


이 세 글자 안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의 무게가 담겨 있을까?, 준비된 미소, 고객을 반기는 따뜻함, 그리고 때로는 지친 일상을 잠시 가리는 가면. 이 인사는 종종 자신에게 되돌아오지 않는다. 손님의 짧은 고개 끄덕임, 혹은 아무런 반응도 없는 시선.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기계적으로' 주문하는 목소리. 그럼에도 인사는 반복된다. 웃음은 의무이고, 예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음식을 나르시는 사람의 손이 지친 것은 무거운 그릇 때문만은 아닐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접어둔 채 항상 밝은 표정을 유지해야 하는 무게, 그것이 더 무거울지도 모른다는 생각.


메뉴를 설명할 때, 종업원의 목소리는 활기차야 한다. "이 메뉴는 저희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인데요. 특별히 준비된 소스가.." 그 설명 속에는 음식에 대한 정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자부심, 고객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종종 지나치게 까다로운 요구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섞여 있다.


그 사람들의 미소는 식사의 맛을 더하는 또 다른 조미료다. 하지만, 그 조미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까?


"음식이 왜 이렇게 늦어요?"

"이건 제가 주문한 게 아닌데요."

"물 좀 더 빨리 갖다 주시죠."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말들이다. 주방의 혼잡과 홀의 동선 및 바쁨은 손님에게 보이지 않는 풍경이다. 보이지 않는 흐름이 꼬이면, 보이는 사람에게 화살이 꽂힌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두 가지다. 주문이 밀리는 이유,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여러 테이블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현실을 차분히 설명하는 말과, 감정이 상하지 않게 받쳐주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열 번째 같은 질문에도 첫 번째처럼 대답해야 하는 날이 있다. 그 순간 '나'가 아니라 가게의 얼굴이 된다. 그래서 '죄송합니다'는 사과이면서 동시에 나를 보호하는 갑옷이 된다.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고 다음 손님을 돌보기 위해, 나는 그 말을 선택한다.


모든 문제가 직원 한 사람의 실수에서 생기는 건 아니다. 갑작스러운 주문 몰림, 다른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겹치면 작은 지연도 점점 커진다. 배가 고픈 손님에게는 그 복잡한 사정을 모두 들려줄 수는 없다. 대신 지금 무엇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지를 말한다. "현재 이 메뉴는 5분 정도 더 소요될 예정입니다. 먼저 제공 가능한 사이드 메뉴를 바로 드리겠습니다.".


완벽한 서비스는 불가능하지만, 성실한 회복은 가능하다. 문제를 인지하고, 가능한 대안을 신속히 제시하고, 마지막에 양해를 해준 고객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일. 그 세 가지가 무너진 마음을 가장 빨리 수습할 수 있다. 그럼에도 퇴근길에 밀려오는 말들이 있다. 이유 없는 불평과 날 선 한마디가 귓가에 남는 날. 나는 그 한마디를 내가 아닌 상황에 향한 화살의 말로 구분해 접어서 버려버린다.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는 나만의 방법이다.


하지만 어둠 속에도 별은 있다. 빽빽한 일상 사이사이에 반짝이는 순간들이 바로 그 별이 된다. "오늘 음식이 정말 맛있네요.", "항상 웃으시면서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그 말 한마디가 하루 종일 꼭 쥐고 있던 마음을 살며시 풀어준다. 달리기를 하다가 숨을 고르듯, 그 한마디에 잠시 호흡을 찾아갈 수 있다. 이런 순간들은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추는 것처럼 갑작스럽지만 따뜻하다.


하루에 백 번의 인사를, 수백 번의 미소를 전하는 일상. 그 대부분이 공허하게 흩어져도, 단 한 번의 진심 어린 교감은 오래 남는다. 손님과 사이에 흐르는 짧은 대화,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나눈 웃음. 그 순간만큼은 '노동자'와 '손님'이 아닌 두 사람으로 만나는 기적과도 같다.


"날씨가 많이 춥죠. 따뜻한 물 먼저 드릴게요."


누군가의 작은 배려에 마음도 따뜻해지는 순간들. 이런 만남이 있기에, 내일도 다시 그 자리에 설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는 순간들. 그것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작은 '빛'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무대 위에서 매일 새로운 감정을 연기한다. 때로는 진짜 내 감정과 직업이 요구하는 감정 사이의 틈새에서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한 연기자가 아니다. 그 안에 진짜 우리가 있다. 피곤한 하루 끝에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음식과 함께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전해줄 수 있는 용기, 지친 몸으로도 또 다른 누군가의 하루를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감정노동자는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들의 웃음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좀 더 이해하고, 그들이 전하는 서비스의 가치를 조금 더 알아볼 때, 우리는 더 따뜻하고 서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오늘 음식점, 카페, 혹은 어디에서든 마주치는 서비스 업종의 노동자들을 만난다면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 한마디를 건네 보는 건 어떨까? 감사의 인사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좀 더 가볍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작지만 큰 힘이 되는 게 아닐까?




감정 노동자와 관련된 이 브런치는 월, 수, 금 연재됩니다.


keyword
이전 03화03. 보이지 않는 얼굴, 들리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