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9. 학생의 미래 그리고 선생님

교사와 학원 강사, 그리고 기간제교사, 그들의 하루

by 김지윤

다시, 교실의 풍경을 떠올리며


가끔은 그 교실 냄새가 그립다. 오후 햇살이 칠판을 스칠 때 생기는 분필가루의 미세한 먼지의 움직임까지. 그 모든 것이 한때는 일상이었다.


그 공간은 '배움'과 '관계'의 무게로 가득했다. 인생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던 장소였다. 그 중심에는 늘 '선생님‘이 있었다.


요즘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켠이 조용히 아파온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뒤편에, 늘 감춰진 긴장과 피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웃어야 하는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그 미소 뒤에는 누구도 묻지 않는 외로움이 숨어 있다.


웃음 뒤의 무게


"오늘도 애들이 말을 안 들어서요. 근데 이상하게, 화를 내는 순간 제 자신이 너무 미워져요."


한 초등학교 교사의 말이다. 그가 전하는 교실의 하루는, '감정 노동'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교사는 매 순간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아이들 앞에서는 '완벽한 어른'이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학부모 상담을 준비하느라 퇴근 후에도 자료를 만들고, 새벽엔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한다. 아이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부르며 칭찬하고, 때로는 혼을 내지만, 돌아서면 '혹시 내가 상처를 준 건 아닐까' 자책한다. 그 자책은 밤이 깊을수록 더 무거워진다.


한편 학원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수업 중에 졸면, 저도 이해돼요. 하루 종일 학교, 숙제, 또 학원… 저도 가끔은 그냥 다 내려놓고 싶어요. 근데 저는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성적이 안 오르면 제가 먼저 잘려요."


그의 목소리에는 담담함 너머로 불안이 배어 있었다. 학원 강사는 늘 '다음 계약'을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보다, 학부모를 설득하는 일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마다, 그는 자신이 교육자인지 영업자인지 헷갈린다고 했다.


그리고 기간제교사가 있다.


"저는 1년 계약이에요. 올해가 끝나면 어디로 갈지 모르죠. 아이들은 제게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학교에서는 저를 '임시 선생님' 취급해요. 교무실 자리도 구석이고, 학교 행사 때는 늘 빠지라는 눈치를 받아요."


그의 말에는 서러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기간제교사는 정규 교사와 같은 일을 하지만, 대우는 다르다. 계약이 끝나면 다시 다른 학교를 찾아야 하고, 언제나 '임시'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다. 아이들 앞에서는 똑같이 웃지만, 그 미소 뒤에는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자리한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공간에 서 있지만, 닮아 있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아이'라는 이름의 세상 속에서 보내고, 그 세상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사람들. 그들의 감정은 늘 뒤로 밀려나고, 아이들의 감정이 우선이 된다. 그렇게 쌓인 감정의 빚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 내린다.


교권이라는 단어가 남긴 그림자


최근 3년간 교권 침해 사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교육부의 2024년 통계에 따르면, 학생·학부모 민원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교원 비율은 74.3%에 달했다. 업무 과중을 이유로 휴직을 고려한 교사 비율도 42%나 됐다. 특히 기간제교사의 경우, 계약 해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민원이나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


이 수치는 단순한 행정 데이터가 아니라, 매일의 '교실' 속 피로와 불안을 보여주는 또 다른 언어다.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교사 자살 사건', '교권 보호 법안'이라는 단어는, 누군가의 삶이 벼랑 끝에서 흔들린 흔적을 대신 말해준다. 그 뒤에는 가족이 있고, 동료가 있고,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통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교단 앞에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말하고,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며, 하루를 버틴다. 그 작은 순간들이 모여 교실의 공기를 유지시킨다. 하지만 그 공기는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교권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요. 마치 우리가 '권리'를 주장하는 게 이기적인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우리도 그냥 존중받고 싶을 뿐인데, 왜 그게 '권리'라는 이름으로 싸워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의 말은 많은 교사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교권은 특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존중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존중은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학원이라는 또 다른 교실


'퇴근 후의 교실'이 있다. 오후 네 시가 넘어가면 도심 곳곳의 불빛이 켜진다. 간판마다 반짝이는 이름들 — '학원', '스터디', '입시연구소'. 그곳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교사'들이 하루를 맞는다.


학원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학원에서는 교사보다 '성과'가 우선이에요. 아이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결과'를 관리하는 느낌이랄까요. 한 달에 몇 명이 성적이 올랐는지, 몇 명이 학원을 그만뒀는지, 그게 제 평가 기준이에요."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피로가 묻어 있었다. "그래도 애들이 성적이 오르면 너무 기뻐요. 그 순간엔 저도 '선생님'이 되는 것 같아요. 근데 그게 오래 가지 않아요. 다음 시험이 다가오면, 다시 불안해지거든요. 이번엔 또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 하면서요."


그 말 속에는, '교육'과 '산업' 사이에 놓인 경계의 불안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누군가에게는 꿈을 돕는 일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버텨내기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학원 강사는 교사처럼 안정적인 신분을 보장받지 못한다. 언제든 해고될 수 있고, 아무리 아이들을 잘 가르쳐도 '수강생 수'가 줄면 그만이다.


한 학원 강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교사 임용에 두 번 떨어졌어요. 그래서 학원을 시작했죠. 처음엔 '잠깐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5년째예요. 이제는 돌아갈 곳도 없는 것 같아요. 학원 강사는 사회에서 '반쪽짜리 선생님' 취급을 받아요. 교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반 직장인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 같아요."


그의 말에는 자조와 체념이 섞여 있었다. 학원 강사는 종종 사회적으로 평가절하된다. '진짜 선생님'이 되지 못한 사람, 돈을 벌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 그런 시선이 그들을 더 외롭게 만든다.


기간제교사, 임시라는 이름의 무게


기간제교사는 한국 교육 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전체 교사 중 약 20% 이상이 기간제교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그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정규 교사와 같은 수업을 하고, 같은 아이들을 돌보지만, 대우는 전혀 다르다.


한 기간제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3월에 학교에 왔어요. 아이들은 처음 봤을 때 '선생님'이라고 불렀죠. 근데 2월이 되면 저는 또 떠나야 해요. 아이들은 왜 선생님이 떠나냐고 물어요. 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선생님은 임시니까'라고 말해야 할까요?"


그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배어 있었다. 기간제교사는 아이들과 정을 쌓지만, 그 정은 언제나 1년 이내로 끝난다. 그들은 매년 새로운 학교, 새로운 아이들, 새로운 동료들과 관계를 맺고, 또 떠난다. 그 반복 속에서 그들의 정체성은 흔들린다.


"저는 제가 교사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헷갈려요. 학교에서는 정규 교사처럼 일하라고 하면서도, 대우는 그렇지 않아요. 연수 기회도 적고, 승진 기회도 없고, 심지어 방학 때는 월급도 안 나와요. 그러면서 아이들한테는 '선생님'이어야 하죠."


기간제교사는 감정적으로도 고립되기 쉽다. 정규 교사들과의 관계에서 미묘한 거리감을 느끼고, 학부모들도 그들을 '진짜 선생님'으로 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교직 사회에서도, 사회 전반에서도 '임시'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다.


사회는, 그들의 미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교사와 강사, 기간제교사를 향한 사회의 시선은 종종 양가적이다. '아이들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도덕적 기대와, '공무원·노동자'로서의 현실적 처우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스승의 은혜'를 강조하며 교사를 성인군자처럼 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권리 주장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 학원 강사는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기간제교사는 '임용 실패자'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런 시선은 그들을 더욱 외롭고 지치게 만든다.


정책은 여전히 미세하게 움직인다. 2025년부터 시행되는 '교권보호 종합대책'은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법적으로 보호하지만, 동시에 '학생의 인권'과 '학부모의 참여' 역시 고려해야 한다. 결국 교육 현장은 여전히 '균형'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그 균형 속에서 교사 개인의 감정과 고통은 자주 간과된다.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는 우리한테 완벽하길 바라요. 항상 웃고, 항상 인내하고, 항상 이해해야 하죠. 근데 저도 사람이에요. 저도 화나고, 지치고, 때로는 무너지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이면, '교사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들어요."


이 말은 많은 교육자들이 공감하는 현실이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늘 '모범'이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산다. 그 압박은 그들의 정신 건강을 위협한다.


감정의 빚, 그리고 번아웃


교사와 강사, 기간제교사는 모두 '감정 노동'의 최전선에 있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뒤로 미루고, 아이들과 학부모의 감정을 먼저 돌봐야 한다. 그렇게 쌓인 감정의 빚은, 어느 순간 번아웃으로 터져 나온다.


한 교사는 이렇게 고백했다.


"작년에 번아웃이 왔어요.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학교 가는 게 두렵고, 아이들 얼굴을 보는 것조차 부담스러웠어요. 그런 제 자신이 너무 싫었죠. '나는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데, 왜 이럴까' 하면서요. 결국 병가를 냈어요. 그런데 복귀하고 나니까, 동료들이 저를 이상하게 봐요. '쟤는 약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 같았어요."


번아웃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과도한 업무, 불합리한 대우, 사회적 시선의 압박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그러나 많은 교육자들은 번아웃을 겪어도 드러내지 못한다. 드러내는 순간, '자격 없는 교사'로 낙인찍힐까 두렵기 때문이다.


학원 강사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저는 번아웃이 와도 쉴 수 없어요. 쉬는 순간 수입이 끊기거든요. 그래서 아파도 참고, 지쳐도 웃어요. 학부모들 앞에서는 늘 밝아야 하니까요.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그냥 누워 있고 싶은데, 다음 날 또 수업 준비를 해야 해요."


기간제교사는 번아웃을 호소할 곳조차 없다.


"저는 1년 계약이라서, 힘들다고 말하면 다음 계약이 안 될까 봐 두려워요. 그래서 다 참아요. 근데 그러다 보니까, 제가 왜 교사가 되고 싶었는지 잊어버린 것 같아요."


교실 안의 진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교실로 돌아간다. 한 교사에게 물었다. "요즘 교단에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요. 아이들은 금방 웃고 잊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제가 한 말을 확대해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요. 가끔은, 내가 아이보다 어른을 더 두려워하게 됐구나 싶어요. 학부모 상담 전날 밤에는 잠을 못 자요. 뭘 어떻게 말해야 오해가 없을까, 계속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버틸 수 있게 하는 건 뭐예요?"


"그때그때의 작은 순간들이요. 아이가 '선생님, 오늘 수업 재밌었어요'라고 말할 때요. 그 한마디면, 하루가 좀 가벼워져요. 어제 제가 힘들어하는 걸 눈치챈 아이가 쪽지를 줬어요. '선생님, 힘내세요'라고 써 있더라고요. 그 순간, 울컥했어요. 아, 나는 이 아이들 때문에 여기 있구나, 하면서요."


학원 강사에게도 물었다. "학원 강사로서 느끼는 어려움은요?"


"우린 늘 대체 가능한 존재예요.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학부모들 마음에 안 들면 그만이에요. 그래서 늘 불안해요. 하지만 아이가 제 노트를 보고 '이건 꼭 가져갈래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그래, 이 일에도 '마음'이 남는구나. 제가 가르친 아이가 대학에 붙었을 때, 그 아이가 저한테 감사 인사를 하러 왔어요. 그 순간만큼은, 제가 '선생님'이었어요."


기간제교사에게도 물었다.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나요?"


"2월이요. 아이들과 헤어질 때요. 1년 동안 정들었는데, 또 떠나야 하잖아요. 아이들이 울면서 '선생님, 내년에도 우리 학교에 계세요'라고 말해요. 근데 저는 그럴 수 없어요. 그 말을 할 때마다, 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계속하시는 이유는요?"


"그래도 아이들이 좋으니까요. 제가 비록 1년만 있어도, 그 아이에게는 평생 기억될 수 있잖아요. 그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정규 교사가 되고 싶어요. 그때까지는 버티려고요."


이 짧은 대화들은 현실과 감정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수많은 교육자들의 초상을 비춘다. 그들은 무너질 듯 버티면서도, 결국 아이의 한마디에 다시 일어선다. 그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버틸 이유가 된다.


다시, 책상 위의 미소를


나는 문득,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의 책상을 떠올린다. 분필 자국이 묻은 손, 반으로 접힌 출석부, 그리고 항상 그 위에 올려져 있던 작은 미소 하나. 그때는 몰랐다. 그 미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 미소가 단순한 '표정'이 아니라, 하루를 버티게 하는 '의지'였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그 미소 뒤에는 수많은 고민과 자책, 피로와 외로움이 숨어 있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웃었다. 우리를 위해서.


'교사'와 '강사', '기간제교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사실 모두 누군가의 **미래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책상 위에는 여전히, 작은 웃음과 책임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한 교사가 교탁 위에 커피를 올려놓고 아이를 기다린다. 한 강사는 문제집을 넘기며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한 기간제교사는 내년을 장담할 수 없지만, 오늘만큼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다.


그들은 완벽하지 않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무너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일어선다. 아이들의 웃음 때문에, 그 작은 '선생님'이라는 호칭 때문에.


사회는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완벽한 인격, 무한한 인내, 헌신적인 사랑.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다. 그들도 상처받고, 지치고, 외로워한다. 그들도 누군가의 위로와 지지가 필요하다.


그 미소 하나가, 누군가의 세상을 단단히 붙잡아주는 힘이 되기를. 그들의 책상 위에, 다시 따뜻한 미소가 머물기를. 그리고 그 미소가 억지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피어난 것이기를.


오늘도 그들은, 책상 위의 미소를 지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 미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그들의 하루가 조금이라도 덜 외롭기를, 조용히 바란다.

keyword
이전 08화08. 미소 뒤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