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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감정의 무게를 배우는 사람들

심리상담사, 치료사

by 김지윤

마음의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


우리는 종종 "마음을 돌보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 그들을 다정하고 안정적인 존재로 그립니다. 늘 차분하고, 부드럽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줄 줄 아는 사람들로요. 마치 고요한 호수처럼, 어떤 파도도 흔들림 없이 받아낼 수 있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에게 안정을 기대하고, 위로를 구하며, 때로는 우리 자신도 꺼내놓지 못한 감정의 조각들을 털어놓습니다.


하지만 상담실의 문을 닫은 뒤, 그들 또한 인간입니다. 타인의 감정을 하루 종일 받아들이고, 그것을 흡수하며, 그 여파 속에서 자신을 다시 추스르는 일. 그것이 그들의 하루이기도 하지요. 그들은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혹은 잠들기 전 어둠 속에서 오늘 들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목소리, 눈물, 떨리는 손, 말끝마다 묻어나던 절망의 냄새까지도요.


심리상담사는 말의 기술보다 감정의 온도를 배우는 사람입니다. 눈빛 하나, 숨의 속도 하나에도 마음의 결을 읽어내야 하니까요. 그들은 언어 이전의 언어를 듣습니다. 침묵의 빛깔, 한숨의 무게, 미소 뒤에 숨은 슬픔의 그림자까지도. 때로는 말하지 않은 것이 말한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압니다.


그러나 그 섬세함은 때로 양날의 검이 됩니다. 남의 아픔에 너무 가까이 닿을수록, 자기 마음의 경계가 희미해지거든요. 어디까지가 내담자의 감정이고, 어디서부터가 자신의 감정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 경계가 흐릿해질 때, 상담사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슬픔을 느끼고 있는 걸까?"

한 상담사가 말했습니다.


"내가 들어주는 게 위로가 된다는 걸 알지만, 가끔은 그 말들이 제 마음을 통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많은 슬픔을 들여다보다 보면, 내 마음의 색이 바래요. 마치 오래된 천처럼요. 처음엔 선명했던 색이 점점 흐려지고, 어느 순간 내가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의 목소리엔 피곤이 아닌, 조용한 체념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불평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일을 계속하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무게에 대한, 담담한 고백이었습니다.


슬픔의 잔향을 품은 공간


상담실은 조용합니다. 벽은 두껍고, 창문은 닫혀 있습니다. 그 안에서는 누군가의 인생이 천천히 열리고, 닫히고, 또 다시 풀립니다. 한 시간 남짓한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깊은 구석을 꺼내놓습니다. 바깥 세상에서는 결코 보여주지 않았던 얼굴을, 목소리를, 감정의 결을 이곳에서는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분노, 수치, 미움, 후회 — 사회가 쉽게 허락하지 않는 감정들이 조용히 흘러나오지요.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감정들을 억누르고, 감추고, 적절한 표정 뒤로 밀어 넣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상담실은 다릅니다. 이곳에서는 미워해도 괜찮고, 후회해도 괜찮고, 무너져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에서 울고, 소리 지르고, 때로는 말없이 고개만 떨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침묵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일, 눈물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 그저 옆에 앉아 있어주는 일. 그 일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단순함 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적 노동이 들어가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상담사는 자신의 감정을 한쪽에 조용히 내려놓고, 오직 상대방의 감정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그 침묵의 시간은 듣는 사람에게 더 길게 남습니다. 내담자가 떠난 뒤에도 그 말의 잔향은 공간에 남아, 마치 공기처럼 스며들지요. 벽에, 의자에, 창문 너머 햇살에, 그리고 상담사의 마음속 깊은 곳에. 그들은 그 잔향 속에서 자신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다음 내담자를 맞이하기 전에, 혹은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다시 정리하고 환기시켜야 합니다.


"오늘은 누군가의 슬픔이 내 옷에 묻은 것 같아요."


한 상담사가 그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 고백인지, 마음을 다루는 사람만이 압니다. 슬픔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무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게는 공기를 타고, 시선을 타고, 말을 타고 전해집니다. 상담사는 그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내는 사람입니다.


위로의 주체와 객체 사이


'위로하는 사람'은 종종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해석하고, 다독이고, 함께 견디는 동안 자신의 고통은 조용히 밀려나 버리거든요.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뒤로 미루는 법을 배웁니다. 오늘의 감정은 내일로, 내일의 감정은 다음 주말로, 그렇게 자꾸만 뒤로 밀려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밀려난 감정들이 쌓여 작은 산이 되어버린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상담사의 하루는 '감정의 수용'으로 시작해 '감정의 정리'로 끝납니다. 그들은 퇴근 후에도 스스로의 감정을 기록하고, 감정의 잔여물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감정노트를 펼칩니다. 오늘 만난 사람, 오늘 들은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가 자신에게 남긴 감정의 흔적들을 차근차근 적어 내려갑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돌보기 위한 의식이자,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정리 과정입니다.


감정노동자가 아닌, 감정의 관리자로서의 하루. 상담사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합니다. 감정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사람. 하지만 그 관리가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숙련된 상담사라도, 때로는 자신의 감정이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나는 감정을 배우지만, 동시에 감정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요. 누군가의 마음을 듣다 보면 내 마음이 공허해질 때가 있어요. 마치 물통에 물을 계속 퍼주다 보니 내 안의 물이 다 말라버린 것 같은 느낌이요. 그때마다 다시 나를 느끼기 위해 밖으로 나가요. 바람을 맞고, 낙엽을 밟고, 커피 향을 맡으면서요. 그런 작은 감각들이 나를 다시 살아있게 해줍니다."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건 전문성보다 인간적인 간절함이었습니다. 감정을 돌보는 일을 한다는 건, 결국 자신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기도 한 거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잃지 않는 것. 그 미묘한 균형을 잡는 것이 그들의 평생 과제입니다.


'공감 피로'라는 이름의 그림자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심리상담사 중 절반 이상이 '공감 피로(Compassion Fatigue)'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몰입할수록, 자신의 정서가 메말라가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피로감과는 다릅니다. 육체적 피로는 휴식으로 회복되지만, 공감 피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소진입니다. 감정의 우물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상담사는 자신이 더 이상 누군가를 도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공감은 치유의 첫걸음이지만, 지나친 공감은 오히려 상처가 됩니다. 내담자의 고통을 너무 깊이 느끼다 보면, 그것이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내담자가 겪는 트라우마가 자신의 꿈속에까지 침투합니다. 어떤 상담사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며칠 동안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상담사들은 그 경계를 배우기 위해 매 순간 '거리두기'의 기술을 연습합니다. 하지만 이 거리두기는 냉정함이 아니라 존중의 다른 형태입니다.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을 온전히 인정하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니까요. 너무 가까우면 경계가 무너지고, 너무 멀면 공감이 사라집니다. 그 적절한 거리를 찾는 것이 상담사의 평생 숙제입니다.


"내담자의 감정을 내 것으로 착각하지 않으려 노력해요. 그건 그들의 삶이고, 나는 그 삶을 바라보는 사람일 뿐이죠. 하지만 그 선을 지키는 게 쉽지 않아요. 특히 내담자가 내 과거와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을 때는요. 그럴 때는 경계가 흐릿해지고, 나도 모르게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 말은 무심하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자기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오랜 훈련이 숨어 있습니다. 경계를 긋는다는 것은 냉담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돌봄을 이어가기 위한 선택입니다.


듣는 사람의 마음에도 불이 켜지기를


누군가의 마음을 듣는 일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상담사는 말을 듣지만, 동시에 침묵을 배웁니다. 말과 말 사이의 공백, 숨과 숨 사이의 멈춤, 그 안에 담긴 진짜 이야기를 읽어내는 법을 배웁니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눈물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야 하고, 분노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입니다. 아무리 깊은 어둠 속에 있어도, 사람은 빛을 향해 나아갈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상담사는 그 믿음을 지켜내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일은 감정의 끝에서 희망을 다시 불러오는 일입니다. 내담자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할 때, 상담사는 그 말 뒤에 숨은 "하지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어요"라는 외침을 듣습니다. 그들은 절망의 언어를 희망의 언어로 통역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웃을 때, 그 미소는 가볍지 않습니다. 수많은 슬픔을 통과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이기 때문입니다. 그 미소 속에는 고통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연민,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경외가 담겨 있습니다.


마음의 무게를 배우는 일


감정노동자의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같은 질문에 닿게 됩니다.

"나는 내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심리상담사들은 그 답을 매일 연습합니다. 그들의 하루는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짊어지는 시간이자, 다시 자신을 회복시키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침에 상담실 문을 열 때,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한쪽에 정리해둡니다. 그리고 내담자의 감정을 위한 공간을 만듭니다. 하루가 끝나고 문을 닫을 때, 그들은 다시 자신의 감정을 꺼내어 살펴봅니다. "오늘 나는 괜찮았을까? 내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그들은 감정의 무게를 배우면서, 동시에 감정의 균형을 배워갑니다. 어떤 감정은 무겁고, 어떤 감정은 가볍습니다. 어떤 날은 감당할 수 있고, 어떤 날은 무너질 것 같습니다. 그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또 다시 일어서는 것. 그것이 그들의 일상입니다.


그 과정이 바로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훈련이 아닐까요.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그렇다고 감정에 휩쓸리지도 않으며,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상담사들은 그것을 직업으로 삼았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기술이기도 합니다.


마음의 자리


누군가의 마음을 듣는다는 건, 그 마음을 고쳐주려는 일이 아니라, 그 마음이 '존재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문제로 여깁니다. 슬픔은 없어져야 하고, 분노는 다스려야 하고, 불안은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담사가 하는 일은 그것과 다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당신의 슬픔은 당연합니다. 당신의 분노는 이해됩니다. 당신의 불안은 충분히 존재할 이유가 있습니다."


상담사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갑니다. 타인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며, 다시 내일의 위로를 준비합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상담실로 향하면서 생각합니다. "오늘은 누구를 만나게 될까?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그리고 나는 오늘 그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낼 수 있을까?"


그들의 일은 결국 '감정의 무게를 배우는 일'. 감정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게. 그 무게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상담사가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조금씩 같은 공부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자신의 감정을 돌보려 애쓰고,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요. 상담사는 그 일을 직업으로 삼았을 뿐,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감정의 무게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어딘가의 상담실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듣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한쪽에 내려놓고, 침묵 속에서 함께 앉아 있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들은 다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을 위해 마음을 정리할 것입니다.


듣는 사람의 마음에도 불이 켜지기를. 위로하는 사람도 위로받기를. 감정의 무게를 배우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감정이 존중받기를.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응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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