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적응하는데 일 년 걸렸어'
아직도 적응 중.
초등학교.
1학기 중반이 넘어서 겨우 친하게 지낼 친구들을 알아내고, 2학기 즐겁게 보내다가. 진짜 이제 마음이 놓이고 편안할 때면 학년이 넘어간다. 바뀐 교실, 선생님, 학우들을 또다시 탐색하고 적응한다.
이 과정이 유독 힘들었던 생각많은 유형의 전형.
이직 한달 차, 그 시절이 떠오르는 얼음모드.
아직 내게 정해진 업무가 뭔지 모르겠고 내가 내 업무를 찾아가야 하는 것 같은데, 프로그램도 아직 전달 못 받았고 그냥 괜찮은 척, 바쁜 척하다가 온다.
유럽인들도 많지만 우리 팀은 99%가 홍콩, 중국, 대만인들이 섞여 있다. 그중 나는 유일한 한국인이고.
고개 숙여 인사한다던가 눈을 굳이 마주치지 않는다던가 표정이 잘 읽히는 등 편한 점이 있다.
언제는 어느 팀원이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라면서 케이크를 돌아가며 나눠줬다. 놀란 나머지 억지 외향성격을 끌어내어 어디로 가는지 가족이랑 살게 돼서 좋은지 이곳의 스몰토크를 시도했다. 아. 순간 그 사람의 아우라에서 케이크만 주고 가고 싶어 함을 느꼈다. 20대 중반 때 아는 지인에게 너무 잘해 주려고 하지 말라는 지적을 당했던 게 생각이 나고 또 생각이 많아졌다. 애쓰고 싶지도 않고 들키고 싶지도 않다.
내 주 업무는 아직 분위기 파악이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생존의 세계.
99프로가 중국어와 영어를 함께 쓴다. 이메일이나 메시지도 중국어로 올때가 있다. 모국어 특유의 편안함으로 자연스럽게 대화들이 통하는 걸 깨달았다. 물론 그중에 영어만 고집하는 깬 사람도 몇몇 있다.
-나는 적응하는데 일 년 걸렸어.
그동안 단합 잘 되고 으쌰으쌰 했던 꼰대 사회에서 적응 잘하고 살았었구나 라는 걸 새삼 또 깨닫는다.
하나하나 옆에 붙어서 세세히 가르침 받고 챙겨줬던 게 익숙하다.
거의 시간단위로 쪼개져있던 스케줄이 그립고 내가 펑크를 내는 일을 없었지만 그래도 책임 구조 명확하고. 메시지는 꼭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등으로 완전히 전달이 됐음을 확인해 주고.
회사는 곧 출시를 앞두고 바쁘다. 그 와중에 6명 디자인 팀 중 2명은 2주 휴가를 갔다.
외주회사에 몇몇 피드백 보내기, 가까운 미래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여주기 등등 세세한 이유로 메시지를 보내도 아무도 대답이 없다. 앙?
내가 관련 기술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라는 큰 이유로 굳이 이 자리를 만들어 나를 고용을 했다. 아마 회사는 내가 혼자서 스스로 하던 기술을 이용해 개척해 나가길 바랄 것이고 그런 자리이다. 마침 나만 데스크톱을 써 디자인팀과 저 멀리 떨어져 앉은 것도 내가 겉도는데 한몫하는 것 같다.
주 3일 출근하는데 거의 매번 남편이 기차역에 마중을 나온다. 서로 몇 시간 떨어져 지냈다고 할 말이 너무 많다. 나는 거의 '오늘도 아무것도 안 했어' '모르겠어' 재잘재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원래 그런 거라고 위로와 조언을 해준다. 본인은 영국에 이직 오고 본인 업무 찾는데 일 년 걸렸다고. 그러고 코로나 와서 이년 휴직했다고. 듣고 보니 그 과정을 다 보긴 했다. 그리고 지금 그 누구보다 과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프랑스도 업무체계가 확실하고 새로운 사람이 오면 옆에 붙어서 챙겨주는 스타일인데 본인도 영국에 와서 처음에 사람들이 너무 쿨하게 업무만 주고 '다음 주에 봐~'라고 해서 당황했다고 한다. 꽤 오랜 시간 자기의 입지가 뭔지 고민했었다고. 생각해 보면 작년과 재작년에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 회사를 다니며 장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을 털어놓았던 게 생각이 났다. 그때는 그냥 건강한 고민 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내 일이 되니 또 이게 쉬운 게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