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비교적 힘차고 상큼했던 시작이었지만 사실 지난 4년간의 내 결혼은 불안만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7년 정도의 장거리 연애. 그 시간 동안 말도 못 할 오해와 신경전과 싸움.
누가 봐도 잘 안 맞는 내 전 남자친구, 현 남편이었지만 알 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은 형체가 없었고 정의되지도 않았고, 그냥 확신뿐이었다.
그걸 안고 사는 내가 제일 힘들었다. 뭔가 이 사람이 내 운명 같은데 인종, 종교, 국적, 언어, 문화, 성격 하나도 안 맞는다니. 그냥 유머코드정도. 먹는 거 좋아하는 것, 여행 좋아하는 것. 웬만해선 내가 하자는 데로 잘 따라주는 편인 것. 이런 사소한 게 맞았다. 일단 부부의 인연이 되었으니 결국 이런 사소한 게 잘 맞아야 한다고 나는 나대로 정당화하며 스스로 세뇌시켰던 것 같다.
'옆집 이웃이랑 부부로 살아도 그렇게 싸우고 이혼하고 하는데 우리가 싸우고 안 맞는 건 당연한 거고 그냥 우리가 서로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하자'라고 우리의 진한 싸움을 서로 듣기 좋게 정당화하기도 했다.
어느 날 문득, 정말 아무 이유 없이 퍼즐이 맞춰질 때가 있다.
KFC에 핫윙을 사러 가는 바람이 많이 불던 길.
남편이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
그 4박 5일 남편이 여행 가는 게 뭐 그렇게 큰일이라고 분리불안을 갖는지 나도 참 한심하다 싶었던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문득 향수병이 예전만큼 심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뭔가 예전엔 억지로 붙어 있었다면 지금은 강을 넘은 느낌.
알 수 없는 확신에 불안했던 게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게 무서웠던 것 같다.
진짜 가족이 되는 과정이 여러 단계가 있다면 그가 어느 잔잔하고 깊은 내 마음속으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온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를 들이고 보니 그 불안의 정체가 어느 정도 보였다.
가족이 생긴 다는 건 그만큼 슬퍼해야 할 시간도 따라온다는 걸 향수병을 겪으며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나 보다. 조카도 생겼고 아빠도 각종 질환을 달고 살고. 모두들 주말이나 휴가철이면 옹기종기 모여 편안하고 즐거운 일상을 보내는, 나와 대비되는 그쪽의 분위기. 동떨어진 느낌. 그리움. 새 가족을 굳이 또 만들어 사서 고생하지 말자는 본능에 지배당한 일상. 정말로 한국의 가족들이 너무 그리웠고 앞으로 몇 번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과 후회에 많이 시달렸었다. 그 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진다.
남편을 사랑하고 아끼지만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는 깊은 마음의 문고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의 행복한 일상 뒤에 결국 남는 건 그리움과 후회뿐이라는 걸 매일 아침, 밤마다 한국의 가족을 그리워하며 실시간으로 겪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떠도는 그 마음을 안고 살았다. 그 불안은 여러 가지 감정 화, 향수병, 슬픔, 불만으로 표출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미안해졌다. 정체 모를 그 감정들을 옆에서 다 겪고 영향을 받았을 테니까.
철없을 때 하는 게 결혼이라는 말.
삶은 결국 혼자 맞아야 하는 내 죽음으로 가는 길일 뿐인데 확신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영원할 것 같은 청춘의 실행력.
남편이 해준 이야기. 공항으로 가는 길과 같은 게 인생이라고. 가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배웅해 주러 동행하지만 결국 게이트를 넘을 땐 혼자 가야 한다고.
언젠가 먼저 두고 가는 불안함 먼저 떠날까 불안함의 티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