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자골목 중심에서 자라고 생활해 오다가 유럽의 한가한 거주지에서 살려니 여간 지루한 게 아니다.
처음 이 집을 봤을 땐 거실 커다란 창밖으로 보이는 템즈강 줄기에 반해 '우리가 꿈꾸던 집이야'를 외쳤다.
마침 가격도 저렴했다.
해당 가격이면 1층, 반지하거나 시내에서 아주 멀거나 원베드룸일 경우가 많았다.
집도 짝이 있다던데.
그렇게 1년 간의 문서 작업과 솔리시터와의 치열한 언쟁과 독촉으로, 계약이 취소되는 기한을 겨우 한 달 더 연장해 가까스로 구매했다. 그때가 23년 1월이었으니까. 정말 피가 말랐었다.
전에 세 들어 살던 집은 일 년 만에 연장 없이 갑자기 주인이 나가라고 해서 정처 없이 우리 부부는 각자 고국으로 떨어져 나간채로 오 개월을 지냈다. 둘 다 재택근무라 천만다행이지.
세틀먼트, 쉽게 말해 비자 여건에 따라 이제 영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왔다. 지낼 곳이 있건 없건.
남편 작은누나네의 버려지다 싶은 허름한 엘리베이터 없는 8층 스튜디오에서 한 달 지내다가 병 걸리기 직전에 영국으로 넘어왔다.
셀러는 셀러대로 돈이 필요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빨리 집을 사야 했다.
호주에 지내고 있다는 셀러와 직접 연락을 해서 누구의 솔리시터가 이 상황을 만들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해결 하고자 했지만, 솔리시터 직업병인지 서로에게 답장이 없다 서로가 전화를 안 받는다.. 이 말 뿐이었다.
이제 진짜 영국에 들어가야 할 시간.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내게 총기가 떨어졌다.
남편에게 '우리 그냥 그 집을 에어비앤비로 빌리자. 어차피 빈 집이잖아'
그 해 유난히 이사가 많았다. 마지막 이사가 되길 바라며 유로스타, 벤, 운전사를 모두 세팅했지만.
지연의 나라. 유로스타가 세 시간 지연된 탓에 꽤나 비 맞으며 고생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고 곧 우리 집이 될 집에 세 들어왔다.
육 개월 만에 맞이하는 창고의 우리 짐들을 다시 정리하다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꿈꾼 것 같은 기분.
한 달, 두 달이 돼도 계약엔 진전이 안보였다.
정말 울화가 치밀고. 한 달 한 달 외주 일을 하면서 정규직이 되고픈 야심에 오래 준비했던 취업은 삼 년째 감감무소식이고.
어느 날 저녁 샤워를 하고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지나간다.. 지나간다'를 되뇌었다.
런던에 사는 대학동기도 집 사는데 애를 먹고
영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남편 회사동료도 집 구매에 진전이 없다하고.
여기저기 계약 뒤집혔다는 사람들의 경험이 들려오고..
아.. 이자 올라가서 새로 모기지 받으면 안 되는데..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어느 날 갑자기 솔리시터가 계약이 성사됐다고 연락이 왔다.
그동안 그렇게 애태웠던 셀러의 이름 문서가 뭔지 구경이나 해보자 했는데 뭐 그동안 받았던 증명서랑 뭐가 다른지 이해가 안 갔다.
어쨌든 우리 집이 되었다!
자 이렇게 우리의, 특히 내가 바라던 집구매를 이뤘다.
영국에 살기로 하고 나서
집을 사는 것과 취업을 너무 하고 싶었다.
목표가 선명하고 클수록 커졌던 불안 속에 결국 한 가지를 이룬 셈이었다.
그 날짜. 마침 친언니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잊히지도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