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으로
2015년에 그를 알았고 수도 없이 많은 조건과 이유들로 그와 짝이 되어선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결혼까지 갔던 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정신승리 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보고 있는 나의 근황이다.
주중엔 일이라도 하지 주말엔 그와 함께 지내고 샀고 꿈꿨던 집에서 덩그러니 시간을 때우려니 여간 착잡한 게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불안에 덮쳐 GP를 찾아갔다.
당일 예약은 안된다지만 너무 쿵쾅거려서 리셉션에서 다른 방법은 없는지 몇 번이고 물어봤다. 몇 번의 거절 끝에 당일 예약을 못 이기는 척 잡아줬다.
다시 집에 걸어갔다가 딱 십 분 일하고 나니 다시 병원에 갈 시간이었다.
병원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작년에 만났던 의사였다. 반갑고 민망한 나머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작년에 봤던 분이시네요"
그 의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아~! 잘 지내셨어요?"
"같은 일 때문에 왔어요"
'당황하고 슬프고 길 잃은 의사의 표정' "오늘 당일 급하게 잡은 진료라 오래 이야기는 못해요. 작년에는 길게 이야기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남편이랑 아직 살고 있어요?"
"네, 근데 소통에 이슈가 있어서 다시 약처방받으러 왔어요"
'다시 불쌍하고 놀란 표정' "약은 언제 끊었어요?"
"작년에 한 삼 개월 먹었나, 그러고 끊었어요."
"왜요? 제가 절대 끊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게 그렇게 됐어요" (사실 작년에 한국에 들어가서 약을 더 받지 못해 강제 종료 됐던 건데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받은 약 다시 받으러 오신 거예요?"
"네"
"..괜찮아요?"
"네, 그냥 소통의 문제로 다퉈서 제가 많이 불안해서 오게 된 거예요"
"절대, 제발 혼자 끊지 마세요. 복용하다가 어느 날 기분이 좋고 다 회복된 것 같아도, 절대 혼자 끊으면 안 됩니다. 오늘 두 달치 처방해 줄 거고 삼주 뒤에 다시 진료받으러 오세요. 제가 뭐라고 했죠?"
"약 절대 혼자 끊지 말 것, 삼주 후 다시 진료 받을 것이요. ^-^"
"Please, Take care of yourself, yah?"
차마 헤어지란 말은 못 하고 대신에 나를 먼저 챙기라는 말을 정말 간절하게 빌다시피 이야기해 주셨다.
인도인 같아 보이는 그 의사와 작년에 진료 때는 깊은 이야기를 했었다.
외국인으로 사는 게 참 힘든 것임을 본인도 잘 안다고, 남편과도 사이가 좋지 않은데 굳이 왜 여기서 사냐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가족이랑 지내는 게 좋지 않느냐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조언해 주셨었다.
어디서 본 적 없는 공통점 없는 의사지만 그 눈빛과 어투는 서로 깊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나를 깊이 이해해 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남편과는 절대 할 수 없는 그런 척하면 척.
의사는 바로 약을 받을 수 있다지만 약국에 가면 늘 40분은 기다려야 한다.
약을 받고 집에 와서 어서 밀린 일을 했다.
자기 전, 약을 삼키니 단숨에 진정이 됐다.
미세하게 떨리던 심장도, 숨도.
큐피드가 어떤 지독한 화살을 쏴 놓은 건지 어느덧 여기까지 와있다.
오늘은 유독 늘 억울하고 답답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좋은 기억만 살아나 아쉬움만 남다가
또 어느 날은, 혼자가 된 가벼움과 나를 다시 찾아가는 즐거움에 그 누구보다 산뜻하다.
그립다가도 너무너무 싫증 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