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20일
사랑스러운 가영에게!
오쇼라즈나쉬의 책을 읽다가 순간 네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글을 써 보낸다!
내용 즉슨, 세상에 평화를 심어주고 싶거들랑 제발 네가 스스로 평화 속에 머물러 있거라. 내면의 세계로 자꾸 들어가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위대한 힘 ― God ―에 접속되어 충전하기를.
우리는 자주 외부의 목표 ― 그것이 아름답고 유익한 목적이 된다 하더라도 ―에 에너지가 소모되어 마침내 스스로 지쳐버리고 평화의 대상이 되는 이웃에게 조차 부담이 되어버리는 결과가 될 터이니까!
마치 충전된 배터리를 사용하다가 그 힘이 소모되어 버린 그때에 가서도 정지된 기계로 무엇인가를 했을 때 그 자체도 물론이거니와 대상이 되는 상대적인 것 또한 아무런 이득도 되질 못하며 도리어 성가신 기계로 전락되어 버리는 것처럼.
미래에 무엇인가 되려고 애쓰기보다 현재 어떤 존재로 되어 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하는구나. 그렇다고 미래를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고 오늘 어떻게 존재해 있느냐가 그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이야기하는구나.
가영아!
네가 일구어나가는 '오늘'이 오쇼라즈니쉬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 대부분이 착각하며 살아가는 '내일'에 희생되는 '오늘'이 아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네가 '오늘' 평화와 사랑 속에 잠겨있지 못하다면 ― 그것도 자연스러운 상태로, 강요된 사랑과 평화가 아니라 ― 네가 '미래' ― '내일' ―에 어떻게 그 사랑과 평화를 흘려보낼 수 있겠는가? 네가 '오늘' ―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 그 사랑과 평화 속에 머물러 있다면 자연스럽게 샘물이 흘러넘치듯 '오늘'과 '내일', '미래'에 그 힘이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위에 적어본 이야기는 너뿐만 아니라 아빠에게도 너무나 절실한 내용이라 같이 생각해 보고 실천하자꾸나. 아빠는 어른이 되어버려 ― 고정관념이 굳어지는 ― 그러한 기운 속으로 들어가기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넌 여린 나무처럼 성장 중에 있으니까 부드러운 기운이 남아 있어서 그러한 기운 속으로 들어가기가 훨씬 나을 게야.
부디 '현존' ― 현재 이 순간에 존재 ― 하는 것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작지만 아름다운, 그러면서 크면서도 작고 아름다운 평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거야!
- 아빠, 엄마가
2003년 10월 20일
저 편지를 받은 2003년이면,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집에서 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였다. 나는 시골에 있는 작은 중학교에서 제법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었고, 나름 시험을 봐서 들어간 고등학교였다. 공부나 성적에 대한 욕심은 있었지만, 경쟁을 즐겨하지 않았고, 중학생 내내 - 인생은 무엇인지, 공부는 왜 하는 것인가 - 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던 ‘애늙은이’ 같은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그런 성향의 아이에게 기숙사 생활은 쉽지 않았다. 그런 내게 아빠는 기숙사로 편지를 종종 보내주셨다. 아빠의 편지가 우편함에 꽂혀 있는 날이면,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편지를 돌려보곤 했다.
오늘 하루, 마음속 평화를 찾아보라던 아빠 엄마의 편지는 그 편지 자체로 내게 위안과 응원이 되었고, 평화를 주었다. 그렇게 혼란 속에서도 내 중심을 잡고, 내 마음속 평화를 유지하는 법을 배워온 것 같다. 입시 경쟁 속에서 모두가 맹목적으로 달리는 것만 같던 그 시절. 지나고보니 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 달려 있었고, 그런 마음을 잘 가다듬길 바란다는 아빠 엄마의 말씀 덕분에 그때도 오늘 하루도 현재에 집중하려 노력하며 마음의 평화를 가다듬어 본다.
- 가영
2024년 8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