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2024년, 읽은 책의 흔적을 남기자
독서는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어렸을 적부터 난 책이 가장 좋았다. 글자를 읽지 못하던 아기일 때에도 엄마께서 읽어주시는 동화책 소리를 좋아했다. (물론 단순히 사랑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좋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분주한 시간에 엄마께서 동화책 전집에 들어 있던 테이프를 카세트로 틀어주면 귀를 기울이면서 동화책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혼자서도 잘 지내던 순둥 한 아기였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맞벌이로 자영업을 하시던 부모님께서는 늘 바쁘셨다. 난 학교만 다녀오면 동네 서점에 가서 몇 시간이고 책을 구경하고 서점 한 구석에서 책을 읽었다. 더러는 마음에 드는 책이 생기면 용돈을 모아서 책을 샀다. 도서관은 동네에서 가깝지 않았기에 난 매일 오후부터 저녁까지 서점에 콕 박혀서 시간을 보냈다. 서점에는 새로운 책이 많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도서관보다도 더 좋았다.
어느 곳에서든 조용히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만족했다. 책의 세계에 빠지면 어느새 현실은 멀어졌고, 몰입한 덕분에 옆에서 누가 날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점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캄캄한 저녁이 올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난 스토리텔링, 이야기를 참 좋아해 왔다. 실제의 역사 이야기도, 소설 속 이야기도 알면 알수록 모두 흥미로웠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즐거웠다. 책의 종류를 가리진 않았지만 이야기를 더 선호하긴 했다.
동서양 막론하고 그리스로마신화부터 우리나라의 옛 설화와 역사, 중국, 고대 로마와 이집트, 중세 르네상스의 역사와 신화 같은 이야기들. 인류의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읽을만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좋았다. 또한 소설은 그저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내 머릿속에 펼쳐지는 한 사람의 생생한 삶과 새로운 경험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어린 시절의 행복에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주변에 읽을 책만 가득하다면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책으로 둘러싸여 있기만 해도 행복했으니 책방에서 일하거나 도서관의 사서를 했어도 참 즐거웠겠다.
2024년에 휴직을 하고서 다른 때보다는 내 시간을 더 여유 있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진로를 고민하면서도 자연스레 책을 마음껏 읽고 있다. 그동안엔 공부하고 일하느라 바빴다는 핑계를 대며,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려 보는 게 참 오랜만이고 소중하다.
읽은 책 중 어떤 책에 대해서는 내용을 기록해두고 싶거나 관련된 내 생각과 감상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독서로 생각의 물꼬가 트이고 마음의 위안을 얻고 갑갑한 상황에서도 숨통 틔우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책이 주는 즐거움과 책을 길잡이 삼아 나아가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쓴 책 「 죽음의 수용소에서 」로 유명한 빅터 프랭클 박사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강조한다. 그의 삶에서 비롯된 로고테라피 정신의학 이론을 통해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한다.
"내면의 본질에 삶의 가치를 두고 자신에게 한 발짝 타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어라. 그대를 절벽 끝으로 내모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바로 당신 스스로이다."
그는 산다는 것은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한다. 인간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라고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것을 찾으려 노력해야 하는데, '왜'에서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지 자신만의 대답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빅터 프랭클은 자신이 극한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을 단지 행운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빅터 프랭클의 말과 이론처럼, 나도 나만의 삶의 의미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방법을 찾고 싶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리라. 그리고 내가 만나는 책들은 어떤 식으로든 나만의 가치 있는 삶을 찾는 여정에서 동반자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