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사장님이 처음이라 이해를 잘 못하신 것 같은데... 1000족, 2000족 주문하는데 할인을 어떻게 해줍니까"
쇼핑몰에서 제품을 사입하는 것과는 단위가 달랐다. 7월에 키포(keepaw)라는 반려동물용품 소매업 사업자를 내고 두 번째 신발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공장 사장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작하는 품목은 강아지 신발이고 사이즈는 총 여섯 개. 아직 정식으로 주문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문량을 예측하기도 어려운데 사이즈당 1,000족, 그러니까 6,000족 이상은 해야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6,000족이라니...'
자칫하면 재고를 그대로 껴안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주문을 그대로 감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제가 사장님께 1,000족을 하나 2,000족을 하나 가격이 동일한 거냐고 여쭤봤었죠. 그때 분명 2,000족 이상이면 할인을 해주신다고 하셔서 그렇게 주문한 거지, 그렇지 않으면 제가 처음부터 이렇게 많이 주문할 이유가 없습니다. 수량을 수정해서 다시 주문하겠습니다."
어렵사리 평정심을 유지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나 자신.. 잘했어. 사장님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장은 대량 주문을 우선으로 하고, 수량이 많아질수록 제작 단가가 저렴해지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래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많은 수량을 처음부터 제조한다는 것은 일에 대한 믿음이 어지간히 두텁지 않아서는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2024년 겨울, 강아지 입장에서 강아지 신발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10개월이 지났다. 2025년 시작과 동시에 목표한 대로 미싱을 배우며 샘플을 만들었고, 끊임없이 사업체의 이름을 구상해서 7월 3일 뚱자 생일에 맞춰 사업자를 등록했다. 대문자 P 중에 P인 내가 이렇게 계획적으로 살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2025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계획적인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그 강아지가 내게도 자식 같은 존재가 되니 사랑받지 못하는 강아지들에게로 시선이 갔다. 지나가는 강아지가 냄새를 맡으려고 할 때 견주가 목줄을 잡아당기면 안타깝고, 짧은 다리로 숨을 몰아쉬며 주인을 쫓아가는 강아지를 보면 잠시라도 인사해서 쉬게 하고픈 오지랖이 발동한다.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몇 차례씩 새끼를 배고, 커터날로 배가 찢긴 뒤 새끼를 빼앗기고, 그 아픔을 겪고도 미용견으로 또 다른 고통을 겪는 강아지들의 삶을 더 이상은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직접 구조하지는 못해도 구조하는 사람들을 금전적으로 돕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키포(keepaw)다.
첩첩산중. 샘플을 만들 때는 '이것만 지나면 된다.' 했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계속되었다.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사업은 예상치 못한 봉우리들을 곳곳에 던져준다. 그래서 흥미롭기도, 그래서 고꾸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하자.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나는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작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시작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