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인사발령문의 패가 던져졌다.
"나 부면장이래, 믿겨? 나 큰일 났다"
"저번에 인사상담할 때 팀장 안 한다고 했지. 부면장 안 한다고도 말 한 거야?"
"나 지금 심각한데, 농담이 나와?"
인사 발령문을 눈으로 확인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남편은 뭐가 기분 좋은지 웃을 뿐이다. 공무원은 인사 발령문 한 장으로 하루아침에 근무지가 달라진다. 점심을 먹고 나서 내일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곳으로 발령받았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지난 20년 동안 2년에 한 번씩 인사이동을 했다고 하면 10번은 부서를 옮겼는데, 인사발령 때마다 새로운 부서로 이동하는 일은 평생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낙장불입(落張不入). 한번 바닥에 놓아버린 패는 다시 무를 수 없다는 뜻의 화투 용어이다. 하얀 A4용지에 적힌 내 이름 석자가 적힌 인사발령문이 공지사항에 떡 하니 올려져 있다. 무를 수 없다. 물론 인사팀 찾아가서 최후의 수단인 휴직을 한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정도의 배포는 없다. 매일 공무원은 내 적성이 아니라면서 이직을 꿈꾸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근무하고 있다. 부면장이 하기 싫지만 하기 싫다고 안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남편은 부인이 승진을 해서인지, 월급이 올라서인지 기분이 꽤 좋아 보인다. 퇴근하고 집으로 온 남편은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다 말고 갑자기 끝말잇기를 하자고 한다.
"아빠가 먼저 시작할게. 기차"
"차표"
"표지판"
"판사"
"사포"
"포부"
이제 아빠 할 차례다.
"부면장"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부면장이 뭐냐고 묻는다.
"응, 엄마가 이번에 부면장이 되었어. 면에서 면장님 다음으로 놓은 사람. 부면장"
나는 지금 심각한데, 남편은 나를 놀리고 있다. 그 뒤로 일주일 정도 우리 집에서는 끝말잇기 열풍이 불었는데, 마지막에는 아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웃고 '부면장'으로 끝나는 이상한 끝말잇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