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탄하기만 할 줄 알았던 직장생활
고등학생 시절 학업에 흥미가 크지 않았던 나는 성적이 우수한 편이 아니었다. 성적에 맞춰 갈 수 있는 학과들 중, 취업이 잘 된다는 치위생학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딱히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저냥 만족도, 불만도 없는 상태로 학교생활을 하며 졸업을 했다. 그냥 남들 다 하니까 학교에 입학을 했고, 남들 다하니까 치과위생사 면허도 취득했다.
졸업을 하려면 치과 실습 기간을 거쳐야 되기에 방학 기간 동안 총 3번의 실습을 하게 되는데, 실습 기간마다 이 일을 평생 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막막하고, 내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학생이고 실습만으로 내 적성과 맞지 않다고 확신하고 자퇴를 하기엔 여태 공부해 온 것들이 아깝다고 느껴졌고, 무엇보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시도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남들 다 하니까 나도 이겨내야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면허를 취득하고 졸업까지 하게 됐다. 졸업을 하고 코로나가 조금 진정될 시기라 졸업여행 겸 여행을 가볼까 생각도 해보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 취업을 해서 일을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이었고, 가족들 역시 당연히 바로 취업을 해 돈을 모아야 된다는 눈치가 강했다. 어린 시절부터 원하는 게 있어도 주장을 강하게 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그냥 남들 하는 대로, 치과 취업을 준비했다.
생각보다 치과 일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친구들보다 조금 더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곳에 취업을 성공했고, 바로 그다음 주부터 출근이 가능하냐는 말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가능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첫 출근날이 다가왔고, 떨리는 마음으로 치과에 들어갔다. 큰 기대를 하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학생시절 실습을 하던 때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급여를 받고 일하는 것이니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된다는 것 하나였다. 모든 게 낯설었고, 일이 힘든 건 아니었지만, 이미 친해질 대로 친해져 있는 집단에 합류된 다는 것은 극한의 내향형 인간인 나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 또한 익숙해지면 괜찮겠지'라는 바보 같은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견뎠다. 조금이라도 빨리 적응을 하기 위해 점심시간에는 기구가 어디에 있는지, 원장님이 어떤 방식으로 치료를 하며, 어떤 기구를 자주 사용 하시는지를 나름대로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저년차 치과위생사가 그렇듯, 진료를 볼 때 할 수 있는 일이 크게 없었기에 틈틈이 기구들을 씻어서 멸균을 돌려놓고 모든 잡다한 일들 역시 도맡아 하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하는 일의 대부분이 고작 기구 설거지, 소공포 빨래, 청소였지만, 내가 속해있던 치과뿐만 아니라 꽤 많은 치과에서 저년차 치과위생사가 하고 있는 일들이었기에 현타가 오긴 했지만, 묵묵히 내가 맡은 일들을 해오며 시간을 보냈다. 기구를 씻던 중 10년 차 선생님이 너는 뭐든 해도 될 아이 같다며 오래 보자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다리가 아프고, 마음도 힘들었지만, 이 따뜻한 한마디가 '나 꽤 잘 버티며 지내고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큰 힘이 돼주었다.
그것도 잠시, 같은 날 퇴근을 위해 옷을 갈아입던 중, 평소 장난기가 많은 것 같았던 선생님 중 한 분이 지나친 장난을 쳐왔다. 정말 친한 친구들과도 잘하지 않는 장난을 직장에서, 그것도 선배한테 당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아무 말도 못 하고 굳어서 실장님을 바라봤다. 여기 있는 직원들 중 가장 높은 직급이니 당연히 도와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그쪽을 바라봤지만,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도움은커녕 농담이랍시고 내 대답을 부추기고 계셨다.
당연히 좋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런 희롱을 당하면서까지 꾹 참을 만큼 돈이 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 집단에서 느끼던 소외감, 낯선 분위기, 아픈 다리, 잡다한 일들을 하며 느끼던 현타는 모두 참아낼 수 있었다. 다만, 이런 말들을 듣고 가만히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도저히 참고 있기가 힘들었다. 성격 자체가 무던했기에 웬만해선 참으려 했으나, 이런 농담은 나에게 큰 상처로 다가오게 되었고 결국 나는 퇴사를 결정하게 된다.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이런 결정을 내렸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그 선택이 옳았던 것 같다.
일은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으로 가기로 다짐하고 이직할 치과를 찾게 된다. 거리가 조금 멀긴 했지만, 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흥미로웠던 교정치과에 면접을 봤고, 합격해 바로 교정치과로 일을 다니게 되었다.
친절하신 실장님과, 선생님들, 사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려고 하시던 원장님까지, 생각했던 것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이었기에 출퇴근 시간이 길었음에도 정말 만족하며 일을 했다.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치아교정에 대한 지식들을 쌓으며 나름대로 하루하루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은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 줄만 알았다. 잠깐 다니던 치과에 비하면 너무나도 좋은 환경이었지만, '이 일을 통해 내가 뭘 얻을 수 있고, 치과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스스로 복에 겨운 생각이라고 세뇌하며 오래 다녀보려 했으나 일을 하며 여유가 생길 때마다 끊임없이 이런 생각이 끊이지가 않았고, 당장 퇴사를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출퇴근을 하며 내가 나온 전공을 살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틈틈이 알아봤다.
구인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두고 일을 알아보던 중 치과 마케팅 회사에서 면접 제안이 오게 된다. 치과일을 하며 느꼈던 왠지 모를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조건은 너무 좋았지만, 전 글을 읽은 분들이라면 눈치채셨겠지만, 나는 뭐든 늘 해왔던 것을 선호하고, 새로운 도전을 잘 하지 않는다.
본가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나에겐 정말 큰 부담으로 다가왔기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을 아무것도 없었기에 한번 도전해 보기로 하고 면접 합격 후 치과를 퇴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