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리달 Oct 08. 2024

줘 대신 주세요


막 단어 발화를 시작할 때 쯤, 아기가 필요한 것을 직접 말로 요구하도록 가르쳤다. 엄마들은 아기가 언제 목이 마른지 언제 물을 줘야할 지 언제 물을 먹어야 할지 다 머릿속에 계산이 되어있다. 어쩌면 아기 눈빛만 봐도 필요한 걸 알아차린다. 아기가 '목말라, 물 주세요' 라고 완전한 문장을 구사하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다. 처음에는 '물'이라는 발음이 안되어 '쭈'라고 했었다. 한 단어에서 문장을 표현하기 전까지 아기가 원하는 것을 즉시 들어주기 전에 아기에게 더 말할 기회와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는 '아~ 쭈 줘? 쭈 줘 해야지'라고 표현하는 방법을 매번 알려주었다. 처음부터 높임말을 가르쳐 긴 문장을 말하는 데 아기가 혹여 좌절할까 싶어 차근차근 짧은 문장으로 연습을 시켜주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쭈 줘' 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쭈→무→물 의 발음 향상을 보여주었다. 처음 입을 떼는 아기에게는 이 간단한 '물 줘'라는 두 단어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자기가 필요한 말 한 마디 내뱉기 위해 그 작은 입술을 오물오물 하고 숨을 가쁘게 쉬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귀엽고 기특하기 그지 없다. '물 줘, 휴지 필요해, 맘마 먹고싶어, 빠방이 타고싶어' 등 요구사항을 자유자재로 표현하기 시작할 때 쯤, 서서히 높임말을 알려주었다. '도와주세요, 필요해요, 드세요, 어디가셨어?' 등 점점 언어습득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 부부는 더욱 더 말투에 신경쓰기로 했다. 내가 남편에게 무심하게 하던 말투도 점검하게 됐다. '~해 줄 수 있어?, ~하는 거 어때?, 고마워, 미안해'. 어쩌면 편하다는 이유로 가장 소중한 가족에게 툭툭 말을 내뱉어 온 것은 아닌지, 나를 성찰하는 기분까지 드는 순간도 있었다. 말투는 결국 습관이란 생각이 든다. 더 예쁜 말투가 상대를 기분 좋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크게 불편하지 않으므로 고칠 생각 없이 생긴대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남편을, 내가 편하게 생각하는 엄마를 내가 대하기 어려운 직장 동료라고 생각해보자. 한 마디도 하기 전에 상대방 기분을 해치지 않기 위해 수많은 표현법을 떠올릴 것이다. 내가 집에서, 아기 앞에서 무심코 내뱉는 말 한 마디의 영향력은 이제 꽤 커졌음을 직감한다. 내가 더 곱게 말할수록, 자동으로 아기는 내 말을 따라하고 있을 것이다.

아기만 발달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처음 하는 육아에 지친 육신을 가진 부모일지언정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열심히도 구축 중에 있다.

아기야 내게 새로운 말투를 연습시켜주어 고마워.

이전 01화 27개월 된 빠방러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