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만 8세 이하 혹은 초등 2학년 이하의 자녀를 둔 근로자가 자녀 양육을 위해 단축 근무를 할 수 있는 제도이다.
최대 1년이 사용가능하며 나는 그 1년을 모두 소진했다.
유급 육아휴직 1년에 이어 무급휴가를 쓰려던 계획이 무산되며 알게 된 제도였다.
지인을 통틀어 주변에서 이 제도를 쓰는 사람은 없었고, 회사에서 역시 나는 비장한 잔다르크였다.
나는 여직원이 비율이 10~20%로 낮은 다소 척박한 분위기의 남초 대기업에 다닌다.
내가 4살 무렵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자주 가던 인천대공원에서 소풍 나온 유치원 언니오빠들에 편승해 같은 원생인 양 자신 있게 꼬리를 잡고 다녔다고 한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시기 전까지 가족들이 모일 때면 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였다. 어쩌면 나는 20대 초반까지도 4살 아이만큼은 아니지만 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내 목소리를 크게 내고 눈에 띄는 행동을 자연스레 하지 않게 됐다. 30대 중반을 달려가고 있는 현재, 나는 다변가도 달변가도 아니며 심지어 그러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더욱더 말수를 줄이고 멀리하게 되는 습성이 생겼다.
그런데 나에게도 '단축근무 요청'이라는 큰 목소리를 내야 할 일이 생겼고 나는 주저치 않았다. 그만큼 회사에서 어렵게 쓰게 된 단축근무의 첫 번째 주자였다.
사랑하는 아기를 두고 일터로 향하는 엄마의 마음은 모두가 비슷할 것이다. 단축근무에 관해서 혹자는 월급여가 줄어들어 단축을 망설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든든한 어린이집이 있어 이 제도 활용에 대해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연장보육이 가능한 든든한 어린이집에 보육을 맡길 수 있었고, 당장 단축근무를 해도 가계에 큰 타격이 없는 상황이었으나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 크다.
늘 무언가를 결정할 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이 중대한 문제에 관해서 나는 어떠한 고민 없이 깔끔한 결정을 내렸다. 그렇기 때문에 비협조적 회사를 상대로 자신감 있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인천대공원에서 모르는 언니 꽁무니를 잡고 '오리 꽥꽥, 병아리 삐약삐약'을 외치던 4살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단축근무를 하는 동안 나는 반쪽 워킹맘이었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었다.
일주일에 3번만 출근하여 07:30-14:30 근무를 했다. 회사가 멀어 5시 반에 일어나 6시에 집을 나서야 하는 것만 감수하면 회사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갔고, 퇴근과 동시에 나는 바삐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면 온 집안 창문을 열고 아침에 남편이 남긴 등원, 출근 전쟁 흔적을 치웠다. 나에게는 하원까지 4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고 저녁 준비를 미리 하기에는 참 짧은 시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 썼던 것 같다. 반찬 두어 가지를 빠르게 하거나 국거리를 손질해 놓고 그도 시간이 안될 때는 쌀을 씻어 예약을 맞춰놓고 편한 옷으로 아기 하원을 하러 향한다. 4시에 아기를 하원해서는 참 다양한 시간을 보냈다. 이런 여유도 유한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놀이터에 수많은 전업맘들을 보며 나와 이 귀여운 아기에게는 누구한테나 늘 돌아오는 4시가 늘 있을 것 같지 않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하원 후에는 아기를 태워 참 많은 곳을 다녔다. 무엇이든 보여주고 경험시켜주고 싶었다. 박물관, 도서관, 농장, 공원, 키즈카페, 쇼핑몰... 우리의 추억이 쌓이는 것이 즐거웠다. 복직 직전 퇴사 기로에 서서 혼란스럽던 마음을 다스려 반쪽이지만 워킹맘이라는 나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면서도 아기를 마음껏 돌볼 수 있다는 현재가 꽤 만족스러웠다. 아기와의 애착관계도 상당히 돈독해져 지금은 아빠가 낄 틈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일주일 중 출근하지 않는 이틀은 밀린 집안일과 유아식, 간식 등을 손수 만들며 또 바쁜 하루를 보냈다. 몸살을 심하게 앓던 하루를 제외하면 아기를 보내고 낮잠을 잔 적도 없다. 누가 자지 말라고 했나? 그것도 아니다. 그냥 자며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고 늘 To-do list가 머릿속에 가득해 잠잘 시간도 여의치 않았다. 지금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나는 왜 그렇게 나를 가혹하게 굴렸을까 싶다가도, 다시 1년 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이 했을 나를 안다. 그만큼 진심을 다해 열과 성을 다해 사랑으로 아기를 키웠다. 그래서인지 잘 보낸 단축 근무 1년에 대한 미련이 없다. 늘 내가 선택한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를 또 몸소 깨달았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무더운 여름은 가고 주말새 계절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1년 간의 숨 고르기를 끝내고 이제 반 쪽 아닌 온전한 워킹맘으로 살아간다. 이전보다는 줄어든 우리 가족의 시간도 잘 만들어보리라 다짐해 본다. 나에게는 내게 소중한 것들을 아름답게 가꿔갈 내면의 힘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