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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inema Aphorism_171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71

by 김정수

CA851. 이자벨 코이젯트, 〈북샵(The Bookshop)〉(2017)

서점(書店) 내기의 어려움. 당하는 쪽과 가하는 쪽. 어째서 인간은 이 두 부류로 나뉘는가. 그녀가 문제의 서류를 찢어 허공에 던져버리는, 그 느린 화면의 상쾌함. 그 순간 그녀 손길의 아름다움. 책장에 책을 꽂을 때 손끝으로부터 밀려오는 행복감. 낡은 집 서점. THE OLD HOUSE BOOKSHOP. 북샵. 북숍. 외진 곳에 책방 열기의 어려움. 한데, 번화가에 책방 열기는 더 어렵지 않은가. “소문들은 다 가짜입니다.” 잊힌 것을 다시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그의 고백. 최초 발행이 1955년인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출간되던 시기의 이야기. 롤리타 판매가 서점을 문 닫게 할 이유, 또는 범죄 사유가 되는가. 셰익스피어의 나라 사람들이 속절없이 드러내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진부함. ‘평가’의 윤리학.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을 어떤 인간들은 완전히 잊은 채, 또는 무시한 채 살아간다. 그의 죽음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행동을 한 뒤의 것이기에 온전히 존엄하다. 1955년에 영국에서는 《롤리타》를 쓰는 것보다 어쩌면 판매하는 것이 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롤리타》를 목사에게 권했다고 해고당한 어린 서점 직원 소녀. 우리는 악의를 지닌, 나아가 자신이 지닌 것이 악의라는 인식도 없는 사람들이 결코 없앨 수 없는 내면의 용기를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CA852. 제임스 카메론, 〈피라냐 2〉(1982)

만일 이 영화에 1억 달러를 투자했더라면? 우리는 정말 시각적으로 해상도 높은 하드 고어 참극을 목격할 수 있었을까.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이름은 그런 터무니없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매우 신빙성 있는 상상을 강제한다.


CA853.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하나의 선택(BESIEGED)〉(1998)

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에 ‘갇힌’ 남편과 떨어져 이탈리아에 의과대학생으로 유학 온 아프리카 여인, 그리고 그녀가 입주 가정부로 일하는 집의 주인이자 피아니스트인 남자와의 연애 감정. 그 집 안에 끊임없이 흐르는 피아노 음악의 선율 속에서 그녀는 속절없이 탈정치의 영역으로 스며들어 가고, 마침내 남자에게 빠져들어 간다. 그들이 결정적으로 동침을 한 날 새벽이 하필이면 남편이 석방되어 돌아온 날이라는 아이러니, 또는 운명의 장난.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선택’의 결과라는 것. 이걸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


CA854. 신재호, 〈게이트〉(2018)

범죄 이야기에서 그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 또는 인물들에게 그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이유나 배경을 설정해 놓는 것은 관객을 정서적으로 감응시키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어코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윤리의 마지노선이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현실 논리이자 현실 윤리다. 이걸 잊게 만드는 영화는 ‘나쁘다’는 것. 더불어 장발장의 윤리가 마지막까지 남는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


CA855. 준 폴켄스타인, 〈티거 무비〉(2000)

혈육만이 가족인 것은 아니며, 지금 여기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과 친구들이야말로 진정한 가족의 자격이 있다는 전언. 대안 가족 개념의 또 한 가지 사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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