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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inema Aphorism_172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72

by 김정수

CA856. 수오 마사유키, 〈쉘 위 댄스〉(1996)

그가 춤을 추는 이유는? 영화는 그 이유에 대해서 구구히 설명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누가 알겠는가. 그가 춤을 춘 이유가 그저 한 여자 때문이 아닌지. 그게 어때서? 추고 싶으면 추면 된다.


CA857. 곽경택, 〈닥터 K〉(1999)

〈그린 마일〉(1999, 프랭크 다라본트)의 아이디어. 의사란 모름지기 자신을 ‘희생’하여 환자의 병을 치유하는 사람임을 이 영화는 새삼 깨우쳐준다. 이것이 새삼스럽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CA858. 고프 루이스, 〈섹스: 애나벨 청 스토리〉(1998)

그녀는 자신이 251명의 남자와 10시간 동안 섹스를 하는 것은 10시간 동안 1명의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섹스는 횟수나 파트너의 수효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CA859. 로베르토 돈헬름, 〈언피쉬〉(1998)

섹스하는 순간에만 가능할지라도 인간에게 허락되는 소망은 한 가지뿐이다. 이거야말로 비극이다. 인간은 그 한 가지 소망을 세상의 평화를 위해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지혜로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CA860. 츠가모토 신야, 〈쌍생아〉(1999)

쌍생아(雙生兒), 곧 쌍둥이도 분명히 형제다. 따라서 그들 또한 에덴 이후의 저 형제간의 영원한 ‘살인의 운명’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는 살인의 다음이다. 카인은 여전히 카인으로 남았지만, 그는 ‘또 다른 그’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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