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80
CA896. 조나단 모스토우, 〈터미네이터 3: 기계들의 반란〉(2003)
심판의 날이 드디어 오다. 이제 더는 심판의 날을 막기 위한 노력은 있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제는 심판의 날 이후 어떻게 인간이 기계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아 지구를 다시 인간의 통제 또는 지배 아래 둘 수 있느냐가 문제다. 마침내 〈매트릭스〉 시리즈의 전(前) 단계까지 왔다. 하지만 그 최종 단계가 〈A.I.〉(2001, 스티븐 스필버그)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나와 있는 답안의 하나다. 어떤 것을 채택할는지는 두고 볼 일. 남녀의 성비를 단순히 숫자 개념에서만이 아니라, 역할의 비중이라는 차원에서 균형 있게 맞추려는 노력이 시나리오의 기본 바탕이 되어 있는 형국.
CA897. 커트 위머, 〈이퀼리브리엄〉(2002)
‘이퀼리브리엄’은 마음의 평형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감정적으로 동요되지 않는, 나아가 감정 자체가 생성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건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체제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하지만 본성을 완전히 방임하는 체제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그게 인간사의 이치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소수의 각성자들이 숨어서 투쟁한다는 설정은 속절없이 카타콤 시절 기독교인들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CA898. 리즈 질, 〈골드피쉬 메모리〉(2003)
성 정체성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개인별로 이루어지고, 성 정체성이 같은 사람들끼리 이루는 관계들의 여러 국면이 사회적으로 용인된다면, 인간은 불행할 이유가 없다. 적어도 그 불행의 원인 가운데 상당 부분은 면제될 것이다.
CA899. 스즈키 마사시 & 오치아이 마사유키 & 스즈키 히로유키 & 오구라 히사오, 〈기묘한 이야기〉(2002)
두 번째 에피소드 ‘사무라이의 핸드폰’ 편은 ‘주신구라(忠臣藏)’에 대한 일본인들의 집착이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마 그들도 그 엄청난 할복의 퍼레이드를 의심했던 것 같다. 아니, 의심할 수밖에 없으리만큼 그 사건은 충격적인 것이었고, 동시에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그래도 이 에피소드는, 중간 과정이야 어떻든, 그 사건이 정말로 벌어진 것이었고, 따라서 감동적인 것이었다는 결말에 이른다. 역사에 대한 검증 절차로서의 핸드폰이라는 설정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핸드폰은 그 사건의 전말을 ‘중계’한다. 그러니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첫 번째 에피소드 ‘눈 속의 하룻밤’은 전형적인 일본식 괴담의 일종. 눈 덮인 산속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끔찍한 환상. 세 번째 에피소드 ‘결혼 가상 체험’은 마지막 반전을 통해 결국 결혼이란 해볼 만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온건한 자리로 물러나 앉는다. 이 에피소드를 마지막에 가져다 놓은 이상 결말을 전복적으로 구성하기란 아무래도 어려워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제는 성인이 된 〈러브레터〉(1995, 이와이 슌지)의 중학생 카시와바라 다카시.
CA900. 모리타 요시미츠(森田芳光), 〈하루(ハル)〉(1996)
상처 입은 사람이 그 상처를 극복하고 새 삶을 살아갈 수 있으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 중요한 것은 이 접근의 자세다. 아무리 범용한 사람의 일이라 할지라도 이 자세의 진지함이 확보되지 않으면 그 일을 리얼하게 다루어낼 수가 없다는 것. 한 남자가 한 여자를,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난다는 일의 지난함을 이제는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컴퓨터 통신’이 어떻게 소화해 내는가에 대한 새삼스러운 확인 또는 관찰. 어쩌면 〈접속〉(1997, 장윤현)의 콘텍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