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대궐같은 집에
보통은 밥 하고 난 뒤 아궁이 때다 남은 잿더미 속을 부지깽이로 살살 뒤적이다보면 작은 불씨 품은 숯덩이 몇 개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된다. 화로에 그걸 담아 방으로 가져다 놓으면 숯덩이에서 빠져나온 열기가 금세 방안 공기를 훈훈하게 데운다. 그리고 은은하게 달궈진 숯불은 알밤이나 말린 생선과 같은 주전부리를 올려놓고 구워먹기 딱 좋았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이 문 틈새로 들이치는 방 한중간에 화롯불을 피우고, 우리 식구들은 가을철에 부지런히 잡아서 말려놓은 생선을 광에서 하나씩, 하나씩 꺼내 구워 먹었다. 방안에 온통 생선 굽는 비릿한 냄새로 가득 차고, 나와 부모님, 언니, 오빠, 동생들까지 좁은 방에 꽉 들어앉아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우린 화로 가까이서 불 위에 천천히 익고 있는 생선을 넋 나간 듯 바라보며 시답잖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시커먼 숯 검댕이 묻은 서로의 얼굴을 발견하고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깔깔 웃었다. 비록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낡은 초가집에서 가난하게 살긴 해도 우린 서로가 있어 든든했고, 세상 누구보다 따스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부엌 아궁이 위에 흰쌀밥과 고깃국이 끓고 있는 놀부, 큰 아버지 집은 이상하게도 사람 기척이 온데간데없고 그냥 휑하니 썰렁했다. 이제 막 봄이 되어 얼었던 땅이 겨우 풀리고 있는 중이어서 하인들 몽땅 논, 밭에 일하러 갔다고도 볼 수 없었다.
한편, 우리 흥부 아버지는 내가 떠온 물을 겨우 조금 받아 마시고 차츰 본래 모습을 찾았는데 한기를 느끼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가 옷 앞섶을 단단히 여미고 마루 턱에 걸터앉아 마당 가운데에 있는 두 사람을 떨떠름하게 쳐다보았다.
- 쥐어짜도 피 한방울 나올 저 인간들, 암만 집에 음식이 넘쳐나도 쌀 한 톨 나눠주는 법이 읎제!
- 아휴, 큰 엄니가 얼매나 무섭게 으름장을 놓던지, 지는 부엌 아궁이 솥에 손 하나 까딱 안 했슈. 근데요, 아부지! 이 집 부엌이고 어디고 할거 없이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없구만요. 참말로 이상허여.
- 잉, 안 그래도 그런 거 같어. 자식 없는 부부 내외한테 식솔이래야 부리는 하인들뿐인디......
진즉부터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아버지와 나는 서로 묘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우선 아버지가 내 눈을 뚫어지게 보면서 입술을 쭉 내밀고 아래턱으로 큰 어머니를 가리켰다. 내가 맡으라는 신호였다. 나는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버진 큰 아버지에게, 난 큰 어머니에게 각자 잽싸게 다가갔다. 갑자기 아버지가 큰 아버지가 잡고 있던 떡메를 빼앗다시피 하며 가로챘다. 순간 놀부, 큰 아버지가 흠칫 놀라 눈을 치켜뜨고 아버지를 노려봤다.
- 이런 염병할 놈! 이번엔 또 뭣이냐?
- 야! 넌 왜 내 옆에 붙어 서서 치근대는 거여?
그때 내 눈길이 저절로 큰 어머니의 코 왼편에 난 크고 검은 점으로 갔다. 그걸 보는 순간 첫째 오빠 얼굴에 비슷하게 난 점이 떠올랐다. 어쩜 둘이 모자 사이도 아닌데 이리 비슷한건지. 나는 잠시 든 생각에서 빠져나와 조금 어색하고 비굴하게 웃으며 큰 어머니 손에서 커다란 나무 주걱을 냉큼 잡아채면서 말했다.
- 큰 어무니, 다들 어델 갔길래 손수 힘들게 떡을 하고 계셔유? 우선 아버지랑 제가 떡을 맹들테니께, 큰 아부지, 큰 어무니께서는 편히 쉬셔유. 헤헤.
- 네에, 형님! 저희가 할테니 이리 주시고 저짝으로 가 계셔여.
- 흠! 아니 좀 전까지만 해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대들더니, 갑자기 요로코롬 알랑대는 것이 영 수상허다잉?
- 아이고, 형님! 형님은 잘 모르시겄지만, 자식이 누구한티 얻어맞는 꼴을 보믄 제 아비 입장에서 속이 상하는 게 인지상정이지라. 아까는 잠깐 정신이 헤까닥 했는갑소. 지가 참말로 큰 실수를 저질렀구만요. 부디 울 형님께서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주시랑게요.
- 오호라, 너 시방 나 자식 읎다고 유세 떠는 것이제? 흥부 네놈이 뭔 말을 해도 내 귀엔 곱게 안들리니께, 그냥 부지런히 떡메나 치거라잉!
미심쩍어하던 큰 아버지가 투덜대며 절구에서 물러났다. 이어서 뱀처럼 실눈을 뜨고 입술과 콧수염을 실룩이면서 떡을 치는 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째려보았다. 아주 못마땅해 죽겠다는 얼굴. 역시 아니나 다를까, 순식간에 잔소리 몇 마디를 속사포처럼 와르르 쏟아내고 뒷짐을 진 채 어슬렁대며 마루로 걸어갔다. 그새 큰 어머니는 이게 웬 떡이냐, 하는 표정으로 앞치마에 손을 쓱 닦고 실실 웃으며 종종 걸음으로 부엌으로 갔다.
- 아부지, 이 떡 맹들고 나믄 우리 밥 한술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남요? 지 배가 고파 힘이 하나도 없슈.
- 에고고, 나두 힘이 딸려 양팔이 후들후들허구나. 이거 다 끝내고 니 큰 엄니한테서 찬밥 한 덩이라도 얻어볼랑게, 쫌만 더 힘내보자!
아버지는 자신의 가느다란 팔보다 훨씬 굵고 묵직한 떡메를 머리 위에까지 들어 올리느라 끙끙 앓는 소리를 냈고, 나는 크고 끈적한 떡덩이를 주걱으로 뒤집느라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