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이나 궁금한 일
아버지는 한사코 속 시원한 답을 들은 후에야 순순히 물러가겠다는 듯이 큰아버지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열이 나서 눈 밑이 울그락 불그락해진 큰아버지가 적잖이 당황해했다. 그 곁에서 큰 잘못이라도 비는 것처럼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고 있으면서도 나는 자꾸 딴 데를 쳐다보고 있었다. 빈 그릇이 흩어져 있는 밥상 위, 크고 넓은 접시에 뽀얀 인절미 떡이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었다. 당장 집어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주변 어른들 눈치가 보여 선뜻 그러질 못했다.
그때 큰어머니가 서로 마주 보고 버티고 앉은 두 사람을 멀뚱히 쳐다보다가 시큰둥하게 상 위로 손을 내밀었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오므려 떡고물이 잔뜩 묻은 떡을 하나 집었다. 쳐다보고 있는 나더러 먹어보란 말 한마디 없이 쩝쩝 소리를 내며 맛나게 먹는 모습이 참으로 밉살맞았다.
(뭣이 저래 진지한겨. 분위기 살벌허게 맹글지 말구, 기냥 인절미나 잡수믄 좋은 텐디...)
참다못해 나는, 에라 모르겠단 생각으로 인절미 두 점을 한 번에 덥석 집어 호기롭게 입에 넣었다. 그것은 두어 번 씹기도 전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 어찌나 부드럽게 꿀떡꿀떡 목으로 잘 넘어가는지! 삼시 세끼 인절미만 먹으라 해도 좋을 만큼 천상의 맛이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큰어머니의 식탐이 또 폭발했다. 지난 며칠 동안 거의 굶다시피 한 나보다 더, 그녀는 접시에 수북하게 쌓인 떡을 놀랍도록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꼭 누가 뒤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두 눈동자가 요리조리 흔들리고 불안해 보였다. 그런 큰어머니를 지켜보다 문득, 그녀의 이상한 식탐과 큰아버지가 감추고 싶어 하는 그 일이 관련 있다는 걸 직감했다.
뭐라 알아듣기 힘든 말을 홀로 웅얼거리던 큰아버지가 마침내 결심한 듯한 눈빛으로 겨우 입을 열기 시작했다.
- 그게 사실은 말이여... 사흘 전에...
그런데 느닷없이 어떤 소리가 생뚱맞게 끼어들었다. 심지어 꽤 크게 들려 흠칫 놀란 큰아버지가 말하려다 말고 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봤다. 아버지와 내가 거의 동시에 같은 쪽을 향해 돌아봤다.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낯선 소리는 대문 너머 집 밖에서 들렸다.
- 뭔 놈의 집에, 밖을 내다보는 사람 하나 없는겨, 게 아무도 읎소! 이 댁에 변고가 있다 해서, 지가 조사차 관아에서 나왔응게 후딱 쫌 나와 보시오잉!
갑자기 대문 너머에서 어떤 사내가 쩌렁쩌렁한 큰 목소리로 집안사람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신나게 떡을 먹던 큰어머니가 두 손을 탁탁 털면서 문을 열어주러 나갔다. 묵직한 나무 대문이 삐거덕, 소릴 내며 열리자 냉큼 집안으로 들어오는 남자. 그는 챙이 좁은 갓을 쓰고 밑단 길이가 좀 짧아 뵈는 도포를 입고 있었다. 두 눈 사이 간격이 좁고, 숱이 적어서 다소 경망스러워 보이는 가느다란 수염을 하고 있었다. 그의 뒤엔 포졸 둘이 연이어 따라 들어와 남자를 가운데로 두고 양쪽에 나란히 섰다.
꽤 오랜 시간 밖에 서서 기다린 것인지 남자는 오만상 짜증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자신을 관아 현감을 모시는, 형방(刑房)이라 소개했다. 그는 곁눈질로 대청마루 위 밥상을 쳐다보다가 큰아버지와 아버지를 차례대로 쓱 훑어보았다. 아마도 둘 중 집안 가장 즉, 주인을 찾는 눈치였다. 같은 자리에서 한참 뜸 들이고 섰는데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답답한 모양새였다. 어색한 정적을 깨고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튼 사람은 큰아버지였다.
- 아이고, 형방 나리! 먼데까지 오느라 고생하셨소. 제가 이 집 주인, 이가(李家) 놀부 올씨다. 일단 안으로, 어여 듭시다요.
- 오, 영감님이 이 댁 주인이시구랴. 현감 나으리 분부대로 서둘러 온다구 온 게, 이제야 왔소잉. 근자에 흉흉한 일이 도처에 빈번히 발생해 갖고, 허참!
이내 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가는 형방을 뒤따라 들어가려고 하자, 큰아버지가 그 앞을 막아섰다.
- 니가 낄 자리가 아닌 게, 저이가 가고 나믄 찬찬히 자초지종을 얘기해 줄 거니께, 넌 나서질 말어.
아버지는 단호하게 저지하는 큰아버지를 보고 잠시 멈칫하다 수긍하듯 고갤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큰아버지와 형방이 방으로 들어가고 방문이 닫혔다. 그새 큰어머니는 부엌에 들어가서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문 앞을 떠나지 않고 서성이다 귀를 쫑긋 문에다 대고 방 안에서 들리는 얘길 엿들었다.
아버지는 안에 들어간 두 사람에게 온통 신경이 쏠려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나 또한 호기심으로 무척 궁금했기에, 바로 곁에 붙어 서서 아버지와 함께 엿듣기 시작했다. 선명하게 들리지 않아 대충 웅웅 하는 소리가 얼핏 들렸는데, 짐작컨대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답하는 내용 같았다. 난 좀 더 잘 들으려고 문풍지 종이에 귀 한쪽과 얼굴의 반을 바짝 갖다 댔다. 우리가 방문에 철썩 붙어있던 그때, 나는 바로 뒤에서 누군가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 에헤, 에헴! 남의 얘기 몰래 훔쳐 듣고, 부녀끼리 참 잘하는 짓이유! 거기 쥐새끼처럼 붙어섰지 말구 이리루, 썩 나와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