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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창작소설

태어나보니 흥부네 셋째 딸 17화

거래

by IndigoB

용수산(龍琇山).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아버지에게 물려주었다는 산이다. 그 산은 집안 대대로 내려온 선산(先山)이 아니었다. 무슨 이유로, 어떠한 사연으로 할아버지 소유가 되었는지 아는 사람이 전혀 없고, 말 그대로 무용(無用)한 산. 뭔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을 할머니 또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해 지나지 않아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산에 대해서 더욱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 산은 오르면 오를수록 크고 험준한 바위가 사방으로 둘러싸여 절벽을 이루고 있었다.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 위쪽엔 꽤 크고 넓은 호수가 있었는데 아무리 가뭄이 와도 물이 사시사철 마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수 밑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을 거라 추정했다. 호수 물이 절벽 끝으로 모여 폭포를 이루고 좁고 길게 아래로 흘렀다. 시원하고 빠르게 흐르는 폭포수가 골짜기 밑으로 흘러가는 모습이, 마치 용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거꾸로 솟구쳐 오르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AI 이미지 생성 - Microsoft Copilot

이 아름답고 절묘한 신비로움을 지닌 용수산은 풍경이 수려하다는 것 이외엔 별 쓸모가 없는 험지 중 험지였다. 거의 대부분 가파른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산 위로 오를만한 길이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산 아래 초입에 풀과 나무가 서식하기 좋은 땅이 조금 있을 뿐, 숲이라 할만한 데가 별로 없었다. 폭포수가 흐르는 골짜기 옆을 거꾸로 거스는 길이 산 위로 오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험한 산길을 겨우 오르고 올라 꼭대기 호수의 맑은 물과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막상 보고 나면 오르는 과정에서 겪었을 힘듦 정도는 실상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용수산을 무섭고 두려워했다. 험하디 험한 산길을 오르고 올라 꼭대기 호수와 폭포의 절경에 흠뻑 취한 후,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는 도중 맞닥뜨리게 될 매우 곤란하고 위험한 상황을 두려워하는 게다. 기꺼이 그걸 감수할 용기와 담대함이 부족하다면, 애초에 그 산에 함부로 오르면 안 된다.

아버지가 그 산을 다시 돌려달라는 말을 했고, 큰아버지가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입술을 뗐다가 붙였다 반복하면서 망설였다. 처음엔 허황하게 들으면서도 재차 생각해 보니 썩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귀가 솔깃한 듯 보였다.


- 용수산, 거기 아무짝에 쓸모없는 산이여. 그나마 산 밑에 쬐금 있는 숲엔 죄다 나무와 칡덩굴만 빽빽이 들어차있고, 땅 토질도 자갈, 모래가 더 많아 찰지거나 기름지지도 않으니... 농사지어 먹지도 못하는겨.

- 돌아가신 아버님도 뭔 생각으로 제게 그 산을 물려주신 건지 잘은 몰러도, 화전이라도 일구면서 개간하다보믄 뭐라도 농사지을 게 있지 않겄소잉.

- 흥부야, 이눔아! 그 산에 집채만 한 호랑이가 산다는 소문도 못 들었냐? 산에 올라갔다 호랭이 밥이 됐는가 못 돌아온 자가 수두룩하거늘, 저리 맹충하고 어리석은겨, 쯧쯧.

- 형님, 그런데 말입니다. 그리 쓸모없는 산을 우찌 제게서 악착같이 뺏으셨습니까? 본래 제 것이었으니 이참에 돌려주시고, 대신 저희 식구들이 형님 댁 일을 도와드리겠습니다요.

- 네놈 식구들이 당장 우르르 몰려와서 우리 집 살림 거덜 내려는 게 아니고?

- 아이고, 형님! 뭔 의심이 그래 태산 같소. 밑에 작은 애들은 됐고, 저 애, 용순이 위에 자식넘들 하고 지랑 안사람만 와서 일하믄 돼지라. 그냥 양식거리만 좀 주시믄 됩니다요.

- 암만 해도 많이 못 주니께 그때 돼서 딴 소리하지 말어. 내 분명히 얘기했응게 알아서 혀어, 이잉!

- 대신, 용수산 땅문서를 꼭 돌려주셔야지라. 제 명의도 다시 고쳐주시고, 형님이 반드시 약조를 지켜주셔야 지도 협조할랑게요. 이 큰 집에 두 분만 계시는 거 위험하지여. 암만요!


무용한 용수산이라 할지라도 막상 아버지에게 되돌려주자니, 역시 그놈의 욕심보와 심술보가 슬금슬금 올라오겠지. 눈동자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침을 바른 입술로 입맛을 다셨다가 똥줄 타는 얼굴로 인상을 찡그리는 큰아버지, 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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