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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차 건더기를 뱉어내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그뿐이다.

by 김로기

겨울에 카페에 가면

커피 대신 유자차를 종종 시켜 마시곤 한다.

유자차를 시켜놓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차를 마실 때쯤엔

걸쭉하게 가라앉은 유자 건더기들이 입안으로 쏟아져 나온다.

차라고 생각했는데 아삭한 것들이 입안에 맴돌면

느낌이 좋지 않아 바로 뱉어내곤 했다.

그리고 뭉근하게 오래 끓인 카레를 좋아해서

종종 카레 전문점을 찾곤 했는데

맵싹하게 끓인 카레의 향을 생각하고 입에 넣었을 때

설컹하게 씹히는 당근의 향이 싫어서

집에서 카레를 만들 때는

처음부터 당근을 빼고 만들기도 했다.

나는 음식을 먹을 때 예상했던

질감이나 향 외에

다른 것이 느껴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작게는 음식을 먹을 때를 예로 들었지만

나는 내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정해져 있기를 바라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으면

어딘가 모르게 불쾌하다.

하지만 어디 계획한 대로만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니지 않았던가.

하루 종일 잠을 자려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연락이 왔을 때.

오랜만에 찾은 떡볶이 집이 하필 그날 임시 휴업을 하고 있을 때.

출력해서 제출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프린트기계가 고장이 나버릴 때.

저녁을 차리기 직전 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럴 때마다 꽤나 당황스럽고 조금씩 짜증이 밀려온다.

위에 말한 경우들 외에도

일상에서 나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들은 상당히 많다.

하루를 보내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마주치고

그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하물며 혼자 지내는 하루라고 한들

내 생각대로만 흘러가주지 않는 순간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런 일들에 하나하나 반응하고 예민하게 굴다 보면

일상은 온통 짜증으로 가득 찰지도 모른다.

내가 카레를 만들 때 당근을 빼고 만드는 것처럼

미리 예상된 일을 제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만

그 순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된다.

유자차를 먹다

갑자기 들어온 건더기의 식감이 싫다고 한들

그 상황이 나를 몹시 불쾌하게 하지는 않는 것처럼

그때마다 가볍게 여기고 대처하도록 하자.

그저 예상과 어긋난 많은 일들을

유자차 건더기를 뱉어내는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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