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먹자니까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 요즈음에는 파는 김치도 잘 나온대. 걸어 다니기도 힘든데 왜 매번 김장을 한다는 거야.“
"사 먹는 게 얼마나 비싼 줄 알아? 김치 조금 먹는 집도 아니고 너희 아빠가 입에 안 맞아하잖아.”
해마다 올해는 김치가 조금 짜네 혹은 배추가 맛이 별로네 첨언과 잔소리만 하는 아빠의 입맛은 왜 포기를 못하는 걸까. 김장만 했다 하면 몇 날 며칠을 허리도 제대로 못 펴고 아파하면서도 엄마는 미련하게 또 장을 보러 나갔다. ‘장을 보다’라는 말은 왜 이리 간결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을까. 음식을 하기 전 가볍게 준비를 하는 손쉬운 일이구나 하고 왜 많은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드느냐 말이다. 아름다운 옷을 빼입고 여유롭게 카트를 끄는 티브이 속 모습들은 현실 장보기와는 거리가 멀다. 재래시장은 늘 김장의 철을 맞이하는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배추와 무, 각종 조미료는 또 얼마나 무거운지. 또 동네 대형 마트부터 24 시 식자재 마트까지 들러 시장에서 구하지 못한 각종 재료들을 구매해야 겨우 장보기는 끝을 맺는다.
그렇게 엄마를 따라서 김장을 시작한 지 이 년이 되어 가자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가만히 집에 들어앉아 핸드폰 화면 너머로 재료를 고를 수도, 절여진 배추를 사 수십 번을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수고를 덜 수도 있는 세상이지만, 엄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늘도 그놈의 돈이 문제겠지. 얼마 차이 나지 않은 금액을 아껴 보고자 더 고생하는 엄마를 뒤로할 수 없었다. 함께 새벽이 가까워지는 시간까지 무거운 눈꺼풀을 잡으며 마무리를 해 보니 이 힘든 노동을 혼자 견뎠을 뒷모습이 눈에 선해왔다. 내 몸 하나 편해 보고자 품었던 무관심은 이제야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수북이 쌓인 배추에 김치 속을 던지듯 집어넣다가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로 앓는 소리를 하는 엄마에게 무심코 이제 들어가서 쉬라는 소리를 내뱉은 날이 있었다. 몇 번을 거절하던 엄마가 못 이기는 척 그럴까 하고 침대에 들어가 누운 지 몇 분이 지나자 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참! 쉬는 게 억울해서 눈물까지 나와? 그러면 이리 나와서 속 치대든가." 끊이지 않는 엄마의 훌쩍임에 민망해진 나는 괜스레 장난 섞인 타박을 건넸다. "고마워서 그러지. 니가 다 큰 것 같다. 엄마도 도와주고."라며 엄마는 눈물을 닦으며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생각지도 못한 간지러운 소리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다 큰 것 같다라.
큰 거실에 앉아 가족 세 명이 하루도 빠짐없이 상 위에 얹어 놓고 먹을 많은 양의 김치를 만들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속이 튼실하면 당연히 무게가 나가는 배추를 들며 그날 그녀는 질 좋은 상품을 골랐다며 마냥 기쁘기만 했을까. 예쁜 초록색 빛을 띠는 단맛이 나는 무를 값싸게 산 그날 그녀는 집에 오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었을까. 무거운 고무 대야를 이용해 소금물을 수도 없이 옮기며 배추를 직접 절이면서도 돈을 많이 아꼈다며 만족스럽기만 할 수가 있었을까. 도움 하나 주는 가족 없이 새벽까지 지속되는 외로운 싸움에서 그녀는 잘 먹을 가족들을 생각하며 행복하기만 했을까.
별 다른 반찬 없이 김치만 올라온 식탁에 먹을 게 없다며 투덜거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집에 먹을 게 없으니 대충 김치나 먹자며 쉽게 이야기하던 우리 가족의 모습 또한 스쳐 지나갔다. 매일을 입에 넣는 그 김치는 대충이라는 취급을 받을 음식이 아니었다. 며칠을 꼬박 힘들여 만든 사람의 정성이었고 맛있다며 끄덕이는 고갯짓 한번 보기 위해 버틴 인내의 시간이었다.
어렵사리 만든 김치를 입에 넣은 가족이 맛있다고 하는 한 마디면 찌뿌둥했던 몸이 싹 풀리고, 쌓였던 짜증이 확 날아가는 경험을 해 본 이제는 더 맛있는 사랑을 담을 준비가 된 채로 김장철을 맞이한다.
엄마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김장 철이 너무나도 짧지만 지나온 해보다 조금 더 성숙해져 푹 익은 나의 마음까지 담아 올해도 우리 집은 김장 철이 오면 서로의 사랑을 담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