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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철학 Ⅱ

by eunsu




니야마 Niyama | 권함, 준수사항, 개인적인 수양과 규율, 자신과의 관계


청결 = 사우차 Shaucha
: 외적&내적 실천법 사유

*사우차는 아파리그라하 실천어


몸과 마음이 청결하면, 자기만족을 위해

남과 접촉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요가수트라 2.40-


외적

- 신체, 생활공간, 관계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단식은 물론이며, 인간관계 정리도 포함한다.


사람이 단식에 들어가면 그것을 소화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몸은 그동안 전화가 일어난다. 단식을 하는 동안 몸은 죽은 세포. 즉, 독소를 몸 밖으로 배출한다. 이는 마치 일주일 내내 바빠서 못한 집안일을 하는 것과 같다. 자기 청소의 과정이 시작되면 몸에 필요하지 않은 것. 짐처럼 부담만 되는 것들이 청소된다. 단식은 하나의 훌륭한 정화 기법이다. 가끔씩 일도 하지 않고 하는 단식은 건강에 이롭다. 대신 물을 많이 마시고 휴식을 잘 취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생각의 단식으로 이어가 보자.


Q. 사우차에서 자기만족이란?

감정적 욕구 (나의 이익)를 위해 남과 접촉하는 일에 관심이 없게 된다.

-> 남에게 집착하지 않게 된다.


내적

- 알아차림을 통한 감정의 정돈

"생각은 과거의 기억물이며

감정은 자극에 대한 몸의 반응이다."

감정의 정돈을 위해서는 감정과 친해져야 하며, 감정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자주 봐주어야 한다. 감정과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이 전부이다. 감정을 억압하거나, 해결하려 하거나, 바꾸려 하지 말고 그저 허락하는 것.


왔던 것은 다시 간다.

생겨났던 것은 사라진다.


감정이 왔을 때, 몸의 반응을 느끼며 가만히 있어라. 감정을 생각하려 하지 말고 온전히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이때, 명심해야 할 것은, 순수의도와 집착을 구별하는 것이다.


순수와 청결은 몸을 보호하고 그것을 관조자(아트만)의 안락한 거처로 만든다. 이를 위해 기꺼이 사우차 하는 것이기도 하다. 몸은 더 이상 감각적 욕구만을 추구하지 않게 된다. 사우차를 통해 그것을 절제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신처럼, 자신의 몸을 사원 or성전 or절처럼 대하라.


사우차 : 청결에 대한 한 가지 주제로 사유해 오는 과제였는데

각자 다양한 생각들이 소중히 오갔다.


나만 아는 죄 혹은 나만 모르는 내 안의 저항심

아무리 가벼운 것들도 오래 가지고 있으면 무겁다.

하나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

마음을 온전히 비우고 깨끗한 다른 것들을 채워야 한다.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공감 가는 사례가 있었다.


만약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내적 청결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예시로 들어보자.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결단과 감당은 자신의 몫이다.

"왜 이렇게 선택을 못하고 있지?"

정답은 없다. 자문자답을 통해 내 삶의 우선순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토샤 Santosha : 만족


만족으로부터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요가수트라 2.42)

지금 이대로가 행복인 줄 알면,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 때문에 행복해도 그것이 행복인 줄 모른다. 눈, 코, 입, 팔과 다리 등 얼마나 은혜로운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것 중 하나를 뺏겨 보지 않는 이상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매 순간 새롭게 감사할 것들이 늘어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살아간다. 우리는 몸을 청결하게 하면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바라는 것이 없는 상태에 머물러라. 어떠한 상태이든, 하지만 불만족한 상태에서는 바라는 게 있을 수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욕구를 다스리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사우차와 산토샤를 통해 욕구를 다스렸을 때, 타파스를 실천할 수 있다.


청결과 만족이 함께 작용하여 발생한 타파스의 불꽃에 의해 수행자는 지혜의 불을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타파스 Tapas : 열정과 노력


타파스는 고행이다. Tap : 불태우다/as:존재의 상처. 즉, 욕망(욕구)을 불태운다는 의미이다.


고행은 불순물을 태워 없애고 신성의 불꽃이 타오르게 한다. 여기서 불순물은, 욕구와 욕망을 뜻하며 이것을 없애는 것이 수련인 것이다. 신선능 붓디의 지성을 의미한다.


올바른 분별을 따라가야 한다.

인간의 3 독심은 탐(욕), 진(분노), 치(어리석을 치)이다. 이 세 가지를 다스리는 것이 철학이다.


스와디야야 Svadhyaya : 자기 탐구



Sva : 자기 / dhyaya : 공부 | 여기서 뜻하는 "자기"는 아트만, 참 나 혹은 경전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자아는 에고, 자기는 아트만을 의미하기도 한다. 스와디야야는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다.


내가 누구인지,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것을 알아차리는 과정에 있다.

참 나, 아트만, 진짜 나에 대한 탐구는 신에 대한 깨달음(믿음) 혹은

자신이 바라는 신성과의 교감으로 이어진다.


-요가수트라 4.21-


파탄잘리가 말하는 스와디야야는 자기 기억이다.

자신을 끊임없이 지켜보라. 관계는 거울이다.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켜보라. 아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켜보라.

아랫사람과의 관계를 지켜보라. 윗사람과의 관계를 지켜보라.

모든 관계를 거울삼아, 모든 관계 안에서 가면을 어떻게 바꿔 쓰는지 지켜보아라. ( = 알아차림)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전 존재와 얼굴을 맞이할 때 변형이 일어날 것이다.

지켜봄으로써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참 나 가 생겨날 뿐. 오직 깨어있기만 하면 된다.


-쉼, 오쇼라즈니쉬 p.51-


즉, 두려움과 탐욕 속에서도 어떠한 가면을 어떻게 바꿔 쓰는지 관찰하고 내가 무엇이 아닌지 아는 것이 핵심이다. 지켜보고 알아차림을 통해 깨어있으라는 의미가 담겼다.



이슈와라 프라니다나 Ishvara Pranidhana
: 신에 대한 헌신


Ishvara : 신 / Pranidhana : 헌신, 내맡김, 항복

아트만 (개인적) , 브라만(우주적) | 범아일여


이슈와라는 브라만의 인간적 표현이다.


신에게 귀의함으로써, 사마디가 완성된다.

-요가수트라 2.45-


Q. 신에 대한 헌신도?

신은 곧 삶을 뜻하며 헌신은 '나'를 기꺼이 내어주는 의미이다.

오는 대로 무엇이든 받는 것.

삶에 대한 엄청난 신뢰 기반이어야 가능한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믿음.


삶은 지금이다.

요가에 적용해 보면, 오는 대로 아사나를 받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 점을 꼭 명심하라. 나는 귀의할 수 있다. 나를 지켜봄으로써 귀의할 수 있다.

: 지켜봄으로써 귀의는 "저절로" 일어난다.

귀의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다. 귀의는 일어남이다.

: 매 순간, 어떤 생각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말이 오가는지 살펴보면 어떠한 믿음이 스며드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이 탐구의 실천 영역이다.

-쉼, 오쇼라즈니쉬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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