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아름다운 이유, 자연을 보고 있을 때 편안함이 찾아오는 이유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고, 말하고, 증명하려 들며, 욕망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산다. 반면 자연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으며, 그저 자신의 법칙대로 흐른다. 바로 그 점이 자연을 아름답고 편안하게 만든다.
자연의 침묵은 완전한 자기 충족에서 비롯된 침묵이다. 해는 이유 없이 떠오르고, 꽃은 계산 없이 피어나며, 바다는 설명 없이 출렁인다. 자연은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며, 존재 그 자체로 충만하다. 이러한 침묵은 단순한 소리의 부재가 아니라, 무위(無爲)의 지혜이다.
반면 인간은 늘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말은 존재의 확인이자 불안의 표출이다. 말이 많다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불완전하고 불안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인간은 ‘무엇이 되려고’ 애쓰지만, 자연은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이 점에서 인간은 자연에게 배워야 한다.
자연은 가르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말해준다. 말 없는 바위의 고요함, 바람의 흐름 속에서 자연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라. 흔들려도 괜찮다. 사라져도 괜찮다. 결국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자연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강물은 흐르되 본성을 잃지 않고, 나무는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지만 뿌리를 뽑지 않는다.
인간도 이처럼 살 수 있다면.
덜 말하고 더 느끼며, 덜 주장하고 더 존재할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조금 더 자연에 가까운 평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침묵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인간은 말로 존재를 부정한다. 결국 우리는 자연의 침묵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침묵은 나약함이 아니라, 강함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것을 유지하는 힘이다.
인간이 자연에게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 침묵의 지혜다.
말 대신 고요함으로, 욕망 대신 존재로, 이기심 대신 순환으로 살아가는 것.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처럼 아름답고 편안한 존재가 될 수 있다.
타라선생님의 지난주 마음요가 시간,
법정스님의 꽃한테 들어라를 가져오셔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꽃한테 들어라"라는 제목의 진짜 의미는
"꽃한테 배워라."
우리가 꽃한테 배울 점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점을 던지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자연은 수용적이며 헌신적이다.
인위적이지 않다. 모든 것을 순응한다.
신이 주는 위로의 형태와 같다.
등 다양한 인사이트가 오고 갔던 명상 수업.
타라선생님의 생각은
꽃과 자연은 침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인간과의 가장 분명한 차이이다.
침묵한 다는 것은 말이 많은 것과 정반대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우린 왜 말이 많으면 불편할까?
말이 많다는 것은, 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이란, '자신의'생각뿐이라는 것이며
이기적이고 고집불통의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답을 모른다는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일 때
나는 더 이상 나를 가두고 제한하는 생각을 통해
답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게 된다.
그렇게 현실을 완전히 수용해 버리면
더욱 큰 지혜가 나를 통하여 작용할 수 있다.
이제는 생각을 하더라도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더 큰 지혜가 생각 안으로 들어와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고요함의 지혜 7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