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야 알게 되는 오늘의 소중함
암 진단을 받고 몇 개월 후,
스물여섯의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젊고 예뻤고, 밝고 따뜻한 누군가의 친구였다.
생전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나, 너무 살고 싶어.”
그 말이 내 마음을 깊게 붙잡았다.
아주 오랫동안.
살고 싶다니.
우리는 매일 그냥 살아 있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싶다.’는 마음 대신 ‘살기 싫다.‘
같은 말들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이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살고 싶어했던 하루다.
간절하게 살고싶다고 울먹이던 말을 떠올릴 때마다,
숨이 한 번 멎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 든다.
세탁기 돌리는 일,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다 깼던 순간,
카페에서 멍하니 창밖을 보던 시간조차
사실은 누군가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기회였다는 걸.
살아있는 자들만의 권한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평범한 것이 눈물 나게 귀해진다.
살고 싶다는 말은,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에야 간절해지는 게 아니다.
살고 싶다는 말은,
숨 쉬고 있는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말이어야 했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되뇌어본다.
더 잘 살아야지,가 아니다.
더 성취해야지,도 아니다.
그냥 이 하루를, 이 컵에 담긴 따뜻한 물 한 모금을,
잠들기 전 창밖에 반짝이는 가로등을
살고 싶어서, 느끼고 싶어서 살아간다.
누군가 마지막으로 남긴
“나 너무 살고 싶어”라는 말은
내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는 듯하다.
“너는 지금, 내가 바랐던 그 하루를 살고 있어.
그러니 살아. 그냥, 진심으로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