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만들고 딸이 써주는 책 4편
세 번째,
파김치와 깍두기
1. 재료(3-4인분 기준)
- 쪽파 1kg 또는 튼튼한 무 하나
- 양념: 고춧가루, 멸치액젓, 마늘, 생강, 참쌀풀, 홍시, 새우젓, 소금(굵은 거, 가는 거)
- 이번 레시피는 양념 양은 그대로이고, 쪽파나 무 중 하나를 택해서 담그면 된다.
2. 만드는 방법
1) 먼저 찹쌀풀을 만들기 위해 찹쌀가루 밥 수저로 두 번, 물 한 컵을 넣고 끓인다.
2) 수저로 종종 저어주면서 미음이나 죽처럼 걸쭉하게 후두둑 떨어지는 질감 정도까지 끓인다.
3) 완성된 찹쌀풀은 따로 빼서 식혀둔다.
4) 파김치를 할 경우 가늘고 탱탱한 쪽파를 골라서 다듬고 씻어 펼쳐둔다.
깍두기를 할 경우 다리보다 묵직한 무를 잘 다듬고 원하는 크기로 깍둑썰기한다.
5) 파김치를 한다면 말려둔 쪽파를 쟁반에 펼쳐 흰 부분에 멸치액젓 종이컵 1컵 정도 붓고 절여두고,
깍두기를 한다면 썰어둔 무는 큰 양푼이에 담아 굵은소금 두 주먹 정도 야무지게 비벼서 절여둔다.
(둘 다 모두 10분 정도 절여두면 된다. 너무 오래 두면 쓰고 짜다.)
6) 그 사이에 양념을 제조한다.
<1> 고춧가루 종이컵 두 컵, 멸치액젓 종이컵 한 컵 반을 넣는다.
<2> 다진 마늘은 밥 수저로 수북하게 두 번, 다진 생강은 티 스푼으로 두 번 넣는다.
<3> 식혀둔 찹쌀풀을 넣고 열심히 저어준다.
<4> 살짝 싱거우면 새우젓이나 가는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7) 파김치는 절여둔 쪽파는 액젓을 버리고 바로 양념을 잘 버무리면 되고,
깍두기는 절여둔 무를 살짝 물에 헹군 후 물기를 제거했다가 양념을 야무지게 버무리면 된다.
* 작성해 놓은 양념 계량법은 파김치 또는 깍두기 중 하나만 담갔을 때의 양임을 꼬옥 잊지 마세요!
3. 엄마만의 노하우
- 엄마의 모든 김치는 양념이 똑같아서 배추든 뭐든 이 양념을 쓰면 된다.
- 달달한 맛을 첨가하고 싶다면 양념에 대봉감 홍시를 추천한다.
- 매콤한 김치를 선호한다면 고춧가루 종이컵 두 컵 중 반컵 정도 매운 고춧가루를 섞으면 된다.
- 쪽파 조금 남겨서 깍두기에 썰어 넣어주면 좋다.
- [생강:설탕=8:2] 비율로 청을 만들어서 그 청을 양념에 쓰면 생강의 아린맛은 줄이고 단맛을 낼 수 있다.
(이 생강청은 생강차로 먹기도 정말 좋다.)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쓰고 싶었던 음식은 정말 많지만, 단연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은 김치였다. 모든 음식 맛의 근본은 장맛과 김치맛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장을 담그고 김장도 여전히 생배추를 절이는 것부터 하는 엄마에 대한 무한한 신뢰이긴 하다.
요 근래는 계속 사회생활 하느라 바빠서 같이 김장을 못했다. 역시나 올 겨울 김장도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에 제발 적당히 담그라고 잔소리만 주야장천 늘어뜨렸다. 이렇게 겨울 김장철만 되면 나는 말만 많은 못된 딸이 된다. 근데 그도 그럴 것이, 가을에 이미 깍두기를 두 번이나 담갔는데도 엄마는 자꾸 부족하다고 김장을 또 하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9월 어느 날씨 좋은 날, 이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직도 낯선 냄새가 날 것 같은 집에서 느릿하게 짐정리도 하고 쉬고 있었다. 그러다 저녁도 먹어야 하니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나갔다. 낯선 지역에서 처음 가보는 시장에는 벌써 가을 무가 판을 치고 있었다. 아빠가 깍두기를 원체 좋아하시다 보니 엄마는 무가 좋을 때면 잊지 않고 꼭 사간다. 다만, 이사 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엄마도 나도 체력 이슈가 있다 보니 대용량의 전통적이고(?) 심도 깊은(??) 김장을 할 순 없었고, 그 덕에 본의 아니게 소량의 레시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태까지 한 김장 중 제일 쉽게, 게눈 감추듯 깍두기를 뚝딱 담가냈는데 양이 적어 너무 아쉽고 감칠맛 나는 놀라운 맛이 나왔다. 이건 소주다! 라고 했다가 또 얼마나 등짝을 맞았던지. 그 와중에 아빠는 무를 왜 하나만 사 왔냐면서 서운해했다. 아무래도 엄마의 건강을 침해하는 요소는 과도한 집안일 보다, 눈치 없는 아빠와 술고래 딸의 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잠시 불효녀로써 묵념의 시간을 가져보다가, 슬그머니 맥주 한 캔 가져와서 깍두기를 퍼다 먹었다.
결국 익으면 어떤 맛인지 알기도 전에 깍두기는 동이 나버렸고, 엄마는 며칠 사이 다시 무와 쪽파까지 사 와서는 그 귀한 깍두기와 파김치를 주변에도 나눠주기 시작하셨다. 아직도 몸이 많이 안 좋은데 걱정스러울 만큼.
왜 아까운 김치를 나눠줘!
- 많이 담갔으니까 주면 좋지. 엄마 친구들도 엄마 김치 좋아하잖아.
나눠주려고 담갔어? 우리 것도 부족해!
- 그럼 또 담그면 되지.
그러고도 또 나눠줄 거지?
- 아! 내 정신 좀 봐, 세탁기 다 돌아갔겠다.
엄마는 늘 내 잔소리가 시동이 걸리면 바로 다른 말을 하신다. 냉큼 대답을 회피하고 다른 바쁜 일에 몰두하신다. 딸 된 도리로써 온몸의 기운을 다 써가면서 만든 맛있는 반찬들이 줄줄이 밖으로 새는 것 같아 속상한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내 입장에서 엄마의 김치를 나눠준다는 것은 엄마의 정성과 시간, 마음을 주는 것인데 매번 닳디 닳는 건 엄마뿐인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투덜이가 된다. 매번 마음 쓰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각박한 요즘 세상이기에, 나는 늘 심술 가득, 잔소리꾼이 될 수밖에 없다.
엄마가 왜 나서! 굳이 왜 그래!
요즘 엄마한테 제일 많이 하는 말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런 말이다. 굳이, 왜, 쓸데없이. 주로 말리고 부끄러워하거나 이해하지 못해 가슴 답답해하며 한 마디하는 경우다. 멀리서 넘어지는 아이만 봐도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 본인도 무릎이 아프다면서 어르신들에게 굳이 자리를 양보하는 엄마. 여행길에도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주워 담는 엄마. 그것이 한 때는 자랑스러웠지만, 지금은 엄마를 더 챙겼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보니 곁에서 잔소리하고 말리는 말만 늘게 되었다. 그때마다 엄마도 늘 눈치를 보면서 알겠다고 주눅 든 대답을 하시지만, 금세 뒤돌아서면 누구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더 나눠줄 건 없는지를 살펴보신다. 예쁜 이를 더 칭찬하고 힘든 이의 손 잡아주고 싶은 마음에 눈을 반짝이신다.
낭만의 빛. 엄마의 눈은 늘 낭만으로 빛난다. 앞집, 뒷집 서로 문 터놓고 지내며 반찬 그릇이 오가던 낭만의 시대를 관통하셨다. 자고로 다 같이 밥 모아 비벼 먹는 게 제 맛이던 그 시절의 자부심이 충만하셔서 접시가 한 번 넘어가면 누가 이사를 가지 않는 한 늘 반찬을 품고 왔다 갔다 하게 만들었다. 엄마의 마음은 자로 재듯 누구 반찬이 더 좋은 건지를 따지지 않았고, 누구 더 못 받아본 사람이 있진 않은지 오지랖을 떨어댔다. 아, 엄마는 낭만주의자인 것이다.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낭만주의자는 지치는 법을 모른다. 더디고 진부할지라도, 말릴 수 없다. 우리 세대가 아무리 효율과 성과를 두드러지게 보이며 성큼성큼 활개를 쳐도, 그 행보의 그림자 같은 발자국은 낭만주의자의 것이다. 엄마의 발자국은 눈처럼 가볍지만 녹지 않고, 꽃처럼 향기롭지만 지지 않는다.
아, 그리고 낭만주의자들은 김장을 엄청나게 한다.
그런 낭만주의자들에게 말은 필요 없다. 그러니 다음 김장은 꼭 같이 해야겠다.
벌써 나도 사회생활을 한 지 10년 차가 되었다. 늘 바쁜 일이 많다는 핑계로 집에 잘 들르지 못하고 있다. 그때마다 엄마는 직접 오시거나 고속버스를 통해서라도 꼭 내 숙소 냉장고에 김치를 채워 넣어주신다. 김치 하나 갖고 무슨 밥을 먹고 기운을 내냐, 투덜거리다가도 툭 꺼내둔 엄마의 깍두기는 밥에 물을 말아 퍽퍽 먹어대도 기분이 좋고 입맛을 돌게 한다. 계란 프라이 하나 없어도 이상하게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역시 엄마의 손맛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