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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요 3시간전

업기도 힘든 내 마음

무뚝뚝한 애인은 여전히 길냥이를 볼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으러 가고

나는 여전히 맨 손으로 만지지 말라고 해    

 

오랜만에 딸을 만난다고 예쁘게 꾸민 엄마의 모습보다

투덜거리는 엄마의 말들에 마음이 더 상하고     


결국 여전히 나는 내 안에서 머무른다는 것을

‘할 수 있다’는 효력 없는 주문만 갖고서 살지     


그럼에도 나는 하양은 여전히 하양인지 궁금하고

당신의 마음은 내가 보는 것처럼 파랑인지 파랑인 척하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일까

셀 수 없는 밤을 푹푹 떠먹으며 오늘도


그렇게 애썼던 수개월이 무엇이었는지 회의가 드는 며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말만 그럴싸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조금씩 다시 미운 내가 고개를 듭니다. 이 어리고 미운 아이는 언제까지 나랑 싸우고 화해하기 어려울까요. 지겹다고 생각합니다.



몇 걸음 앞으로 가다가도 이내 후퇴한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마음은 생각보다 여려서 단단해지는 듯하다가도 이내 따뜻한 몇 마디, 혹은 희망, 사랑이나 편안함 같은 것들을 맞대고 있으면 스르르 말랑해집니다. 말랑해지면서 주고 싶어요. 지치지도 않는 건지 자꾸 또 나의 마음을 내어주고 마음을 주다가 조급해지면 나를 주고 싶죠. 그건 어려운 일입니다. 나를 온전히 받아내는 건 나뿐이란 사실을 모르지 않으니까요.  


   

어제는 엄마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엄마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차갑게 식다가도 이내 슬퍼지는 그런 감정이 들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그래도 부모님인데.’라는 말들이 스미듯이 상처가 되는 날들이 길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를 보지 않고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나를 자책하다 내가 살고 싶지 않아 지고 나서야 모든 상식이 통하지 않는 개인의 일들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죠.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조금 떨어져 있고 싶어요. 너무 가깝기 때문에 더 아플 수 있는 관계도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10개월 여만에 만난 엄마는 마스카라를 하고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나왔어요. 거동이 불편해서 조심스럽게 걸으면서도 딸 앞에서 지팡이는 짚고 싶지 않아 집에 두고 왔다고 했지요. 엄마를 부축하고 식당으로 이동하기 위해 팔짱을 꼈는데 싸구려 향수냄새가 났어요. 오래간만에 만난 딸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 이렇게 엄마는 잘 살고 있다는 마음으로 한껏 치장한 엄마의 마음보다는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오래된 머리 아픔이지만 난 또 도의적이지는 않았겠지요. 그런 내가 밉고 또 엄마는 가여웠어요.     



식당으로 들어간 엄마는 여전히 조금 무례하고 조금 상스럽고 또 다정했습니다. 무례하고 다정한 엄마를 보고 사는 건 자꾸 나를 미워하게 되는 일이기도 했지요. 어쨌든 밝게 엄마랑 이야기를 하자고 마음먹고 나갔고 나쁘지 않은 식사시간을 보냈습니다. 헤어지는 길에 김치를 담갔다고 들고 온 큰 가방을 주었는데 꽤 무거웠습니다.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데 이 무거운 김치를 어찌해야 하나 싶었지만, 들고 갈 수 있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받아왔지요.     



출근지까지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해야 했고 걸어가는 길에 팔이 아파 오른팔로 들었다 왼팔로 들었다가 양손으로 안고서 겨우 출근을 했습니다. 집에서 김치를 잘 먹지도 않는데. 요즘 사람들 다 김치 인터넷으로 사 먹는데. 필요 없지만 무겁고 거절하자니 고마운 김치 같은 엄마라고. 나는 김치를 들고서 이고 지고 무겁고 버겁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거운 김치 같은 마음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신없이 일을 하고 퇴근길에 문득, 엄마와 동행한 엄마의 남자친구분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옆에서 눈치를 주고 짜증을 부리는 엄마의 모습에도 허허실실 웃고 있던 아저씨가 생각이 났습니다. 방향이 같아서 돌아오는 길에 ‘저희 엄마를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격이 쉽지 않을 텐데요.’라고 하니 ‘누구나 다 장단점이 있는 거니까. 엄마가 사는 것이 힘들어 저렇게 변했지만 천성은 다정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야.’라고 했지요. 나는 올 한 해 산을 뛰고 요가를 하면서도 가질 수 없는 마음이었습니다.     



며칠째 심한 요통이 있습니다. 몇 주째 계속해서 요가 수련을 하면서 후굴의 접근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굴이 깊어질수록 요통이 심해지는 데, 그 통증이 부상인지 성장인지 잘 파악해야 하지요. 내가 나를 살피는 것 외에는 방법도 없어서 버틸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바라보고는 있습니다만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남자친구분은 얼마큼의 시간을 버텼기에 한 사람을 저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싶습니다. 평생 엄마를 겪고 상처받고 또 사랑했지만 나는 끝내 할 수 없었던 ‘그대로 받아들임’을 하고 계시는 그분을 생각하다가 조금 숙연해집니다.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이 들지요. 나는 그래서 늘 빨리 늙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그냥 계속해야겠지요. 누군가를 온전히 바라보려는 노력, 사랑하려는 마음 그저 삶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해 진심을 다하는 것 같은 일들을 말이에요. 지금도 못해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일,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렇지만 못하는 거지 안 해요는 아니니까요. 모든 과정이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더디지만 천천히 쌓아가고 또 무너지더라도 다시 쌓아가고, 요행도 없고 지름길도 없습니다. 버틸 수 있는 통증이라면 견뎌내는 것도 내 의지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니까요.   


   

헤어지던 엄마의 뒷모습이 자꾸 눈에 밟히는 오늘이네요. 오후에 김치 맛있더라고 전화를 드려야겠습니다. 여전히 나는 내 마음하나도 다스리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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