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해주는 공간이 있나요?
원하던 일을 하는 첫 직장에 입사하고,
다음으로 나의 다음 행보는 내가 원하는 곳에 살아보는 것이었다.
대학 전공 수업에 의도적으로 가상의 사이트를 자주 잡은 곳이 서울의 북쪽이었다.
정독 도서관이 있고, 아트선재센터(당시이름) 등 경복궁을 둘러싼 그 동네가 마음을 풍요롭게한 그곳이 나에게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다행히 회사가 그곳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나는 적극적으로 나의 집을 찾았다.
선택의 여지 없이 예산 안에 가능한 곳을 선택했고, 처음엔 몰랐으나 결과적으로 이곳이 딱 2년 동안의 내 집이 되었다.
종로 11번 버스가 지나는 삼청동길과 한옥 마을 사이에 있는 작은 부엌이 딸린 방 하나짜리 집이었다.
창문 밖에서 저녁에는 이탈리안 요리 냄새가 집안까지 들어오고, 아침에는 원두볶는 커피 향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집의 환경이었다.
회사에서 집까지 지하철로 9분!
아마 봄가을의 계절이었을것이다.
6시에 퇴근하고 지하철을 타러 갈때까지는 해가 떠 있으나, 하차하여 지상으로 올라오면 해가 그새 져있는 것이다. 해가 지는 시간을 좋아하는 나에겐 매우 슬픈 순간이었다.
이때의 나는 어느때보다 나의 욕구에 충실했던 때라 방법을 생각한게 바로 조금 돌아가더라도 버스를 타고 시간을 누리는 것이었다.
집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없었으므로 나는 광화문에 내려 시간을 하나하나 씹어가며 천천히 걸어갔다.
마음이 지치거나 유독 힘들었던 때면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들춰보고, 마음에 드는 연필이나 문구 하나를 사들고 들어오는게 나에게 큰 위안이었다.
그 후 경복궁 동쪽편의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그보다 더 나를 위로하는 공간이 없었다.
시간, 때도 중요하다.
해가 지고 가로등 불빛이 들어와 저녁과 밤 그 딱 경계에 서 있으면 내일이 없어도 될만큼 행복했다.
이때의 시간과 공간과 공기가 10여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기억난다.
지금도 나는 이따금 이 곳에 간다. 혼자도 가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데리고도 간다.
시간이 오래걸려도 내가 잡고싶었던 것, 본능에 의지한 적극적인 나의 욕구를 알아채준 나의 20대가 참 고맙다.
내가 원해서 다가가면 언제나 그때의 시간과 공간의 감정 그대로 나를 맞아준다.
여전히 언제나 있어줘서 고마운 공간의 마음.
2024.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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