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나뭇잎에 맺힌 빗물이다.
언젠가 흘러갈 빗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언젠가 다른 빗물이 다시 떨어질 걸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사랑.
나는 은행잎이다.
그래서 흘러오는 빗물도, 떨어지는 빗물도
모두 잡지 않고 떨쳐버리고 마는 그런 은행잎이다.
나는 원래 나뭇잎이었다.
모든 이슬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나뭇잎이었다.
그러나 그 위로 소나기가 내리고, 호우가 휩쓸고 가버려,
내 몸은 점점 노랗게 변해 은행잎이 되었다.
***
아직은 어떠한 빗물도 받지 못하겠다.
아직은 어떠한 빗물도 흐르게 하지 못하겠다.
언젠가 이쁜 빗물이 나에게 와 주어도
또다시 소나기가 올까, 호우가 올까 두렵고 겁이 난다.
난 아직 은행잎이 편하다.
위에 얹은 빗물이 없으면 걱정 또한 없을 테니.
그래도 언젠가 다시 나뭇잎이 되겠지,
그래도 언젠가 다시 빗물을 안겠지,
그래도 언젠가 다시 사랑을 시작하겠지,
그렇게 다시 아파지더라도 용기 내 보겠지.
고운 빗물을 끌어안은 나뭇잎을 보며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