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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하는 날

누구도 소외되지 않기를.

by 강혜진

매월 마지막 체육시간엔

아이들과 피구를 한다.


"오늘 피구 하면 안 돼요?"


누군가 눈치 없이 묻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흠칫 놀라며 서로 눈치를 준다.

선생님과 약속된 시간 아닌 다른 시간에

피구를 운운하면

그달의 피구는 없던 일이 되어버린다는

불문율이 우리 학교 체육관에서는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를

자칫 안일하게 진행했다가는

아이도, 교사도 마음이 상하기 일쑤다.

그래서 늘 나는 승부가 어땠는지를 묻고

만세하고 손뼉 치는 세리머니는 쏙 뺀다.

대신에 어느 팀이 친구를 더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응원했는지,

더 매너 있게 룰을 지키며 플레이했는지를

수업 말미에 피드백해준다.

체육시간에 자신 없어하고

주눅이 바짝 들어있는 아이들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여러 번 언급해 준다.

덕분에 올해는 단 한 번도

피구가 끝난 아이들이

감정이 상해 교실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매달 마지막 날, 피구 경기를 위해

학생들 중 실력이 비슷한 두 아이를 골라 가위바위보를 시키고

번갈아 한 명씩 친구를 고르게 한다.


그런데 늘 그렇게 진행되던 팀 나누기에서

지명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남는 아이들의

불편함을 읽은 것은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상처받는 아이, 소외되는 아이가 없는

체육수업을 하겠다던 내가

매달 한 번씩,

끝까지 지명되지 않고 남으면 어떡하지, 불안감을 안기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지난달에는 늘 마지막까지

지명당하지 못해 남아있던 두 친구를 불러내

팀원을 뽑을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이게 또 부작용이 심하다.


그렇게 불려 나온 두 친구는

자신감도 확신도 없고

친구들 눈치와 반응을 살피느라

팀을 뽑는 데에 시간이 한참 걸려서

기다리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한껏 높아지고

가위바위보 하던 아이들이

지명을 기다리던 때보다

더 주눅 드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


이번엔

명상이 끝난 후 팀원을 뽑기 전에

몇 가지 당부를 했다.


"목소리가 크고 활동적인 친구는

눈에 잘 띄니 팀원을 지명할 때도

우선으로 지명될 확률이 높다.

그런데 피구는

공 잘 던지고 받는 아이들이 아니라

잘 피하는 아이들 몇 명 덕분에

승리하는 경우가 많지.

오늘은 팀원을 뽑을 때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 같은 사람을

먼저 뽑아보는 건 어때?"


그날, 늘 스탠드 구석에 앉아

끝까지 지명을 기다리던 J는

제일 먼저 호명되었고

끝까지 살아남아서 팀의 영웅이 됐다.


다음 달에는 J의 눈빛이 불안하거나 불편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이 들어,

피구 시간을 몇 번 더 가져볼까,

그러면 아이들이 좋아할까,

혼자 빙긋이 웃으며 행복한 고민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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