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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일기

오판에 어필하는 아이를 보면서...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

by 강혜진

야구 경기를 연습하는 중이다.

몇 가지 규칙을 바꿔서 하고 있다.

아이들이 격한 몸싸움을 하는 게 걱정 돼 태그 규칙(수비수가 공을 공격수 몸에 갖다 대면 아웃되는 것)은 없앴다.


그런데 어제 2반 수업을 하다가 공을 치고 달리던 주자가 공을 발로 차서 수비를 방해한 경우가 생겼다. 태그는 없다고 했지만 명백한 수비 방해라 몸이 공에 닿은 공격수는 아웃시켰다.


그런데 오늘 3반 수업을 하다가 3루까지 뛴 한 학생이 엎드려서 손으로 베이스를 짚었는데 수비수가 수비하려고 3루로 공을 던졌다가 엎드려 있는 공격수에게 맞았다. 슬라이딩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걸 어기고 누워있는 아이의 몸에 공이 맞았고, 어제 공격수가 공에 닿으면 수비 방해라 아웃이라고 했던 게 생각나 아웃을 외쳤다.


그 순간, 공에 맞은 아이가 어이없어하면서 어필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공보다 먼저 3루에 도착했는데 공에 맞았다고 아웃시키다니 어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바닥에 길쭉하게 드러누운 아이가 수비를 방해했다고 생각하고 단호하게 아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열받은 그 아이가 구시렁대며 수업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고 ‘ㅆ’ 섞인 욕까지 해대는 것이 아닌가.

표정 관리가 안되고 기분이 나쁘다. 심판이자 선생님인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아주 불량하다.

아웃당하고도 계속 앉아서 투덜대는 게 듣기 싫고 내 뒤통수에 일부러 들리라고 하는 말이 신경 쓰인다.

“그만 얘기해. 네가 그러면 나도 화가 나니까.”

얼굴은 불만이 가득한데 입만 다문다.

수업 마치고 그 아이만 잠깐 남으라고 말했다. 내가 남으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남긴 했는데 내 얼굴을 안 보고 뒤로 돌아서 이야기한다.

“네가 억울한 건 알겠지만 그건 룰이야. 네가 미워서 아웃시킨 게 아니고. 그런데 계속 투덜거리니까 선생님도 불편하다.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

그런데 아이가 안 돌아선다.

“아, 그냥 얘기하세요.”

날 선 목소리로 짜증을 낸다.

열받지만 이성을 챙기자~~~!!!


내가 아이 얼굴 쪽으로 돌아갔더니 다시 돌아선다.

“대화를 하려면 얼굴을 보고 해야지.”

아이를 달래며 말하자,

“그냥 얘기하라고요.”

도를 넘는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이야기하기 싫어 보이는데.”

“네. 싫어요.”

그 순간 못 참고 하면 안 되는 말을 내뱉었다.

“네가 대화하기 싫다고 한 거야. 뒤에서 구시렁대지 말고 가라.”

아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교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계속 마음이 무겁다. 다시 룰을 찾아보고 생각을 해 보니 수비 방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아이 말고 다른 주자는 없었기 때문에 수비는 그 상황으로 종료된 거였다.

오히려 무리하게 수비해 몸에 공을 맞춘 수비수를 혼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잘못 판단한 것 때문에 아이가 화가 나서 갔고, 어른스럽지 못하게 마무리를 지어서 마음이 무겁다.


나는 어른이라고, 엄마라고, 선생님이라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기 말이 틀렸는데도 맞다고 하는 사람은 싫다. 어른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아랫사람의 태도 때문에 화가 나서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어른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내가 그 짓을 했으니 부끄럽고 어딘가로 숨고 싶다.


그 아이를 만나면 정식으로 사과해야지.

아이에게만 사과하는 게 아니라 다음 수업 시작할 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지 마음을 먹는다.


점심시간에 그 아이를 찾았는데 벌써 밥 먹고 하교했단다.

얼른 사과해 버리고 가벼워지고 싶은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만난다.


내가 틀릴 수도 있구나! 나는 내가 맞다고 고집부리는 사람이 아닌 줄 알았는데, 나도 그러고 있구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앞뒤 안 가리고 다른 사람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못된 구석이 나에게도 있었구나.

나는 잘못한 게 있으면 얼른 털어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구나!

잘못해 놓고 사과도 안 하고 뻔뻔한 사람으로 남아있는 걸 힘들어 사람이었구나.

그 마음과 화해해야겠다.

그런 줄 알고 불안한 나를 진하게 만나야겠다.


다음 체육 시간은 금요일,

그 아이와 그 아이의 팀에게

머리 숙여 정중히 사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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