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먹고, 걷고, 찍고, 아프고, 그래도 좋았다

by 요요
무릎이 아프다.

오늘 아침 출근하는데, 다리가 아프더라.
무릎인데 동그란 무릎뼈 쪽이 아니라 바깥쪽 측면… 종아리와 허벅지를 연결하는 그 어중간한 부위.
찾아보니 "장경인대증후군"이라고 하더라.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갈 때 특히 아프고, 자꾸 다리를 약간 절게 돼. 휴식을 취하면 자연스럽게 회복된다고는 하는데… 회사 출근을 안 할 수는 없잖아.

생각해 보니까 어제 많이 걷긴 했어. 걸음 수는 크게 많지 않았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았거든. 그게 무릎에 무리를 준 걸까.


줄이 길었던, 성북세계음식축제

어제 성북동에서 "성북세계음식축제"를 했거든.
이런 축제가 있을 때마다 종종 갔었는데, 이번엔 좀 실망스러웠어.
음식의 맛도 이전보다 떨어졌고, 주류는 부족했고, 동선은 애매했고, 줄은 또 왜 그렇게 길던지.

그리고 축제인데 맥주가 없다니... 그거 알지? 음식과 술, 술과 음식은 같이 있어야지. 그게 기본인데.

그래도 몇 가지는 먹었어.

오스트리아 소시지를 넣은 핫도그, 헝가리의 대표 음식인 굴라시, 닭가슴살이 고명으로 올라간 북한의 옥수수 비빔국수, 그리고 일본의 오꼬노미야끼.

다양한 꼬치요리나 중앙아시아 음식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결국 포기했어.
게다가 해가 너무 뜨거웠거든. 땀 흘리며 기다릴 정도는 아닐 것 같았어.


오스트리아 핫도그는 빵이 차갑고, 소시지도 겉만 겨우 따뜻한 정도였어. 속은 그냥 미지근.
그래도 뭐, 그럭저럭 먹을 만은 했지.

굴라시는 진짜 별로였어. 유럽 특유의 짠 국물을 기대했는데, 웬걸... 한국의 어느 국보다도 싱겁더라.
거기에 마카로니를 같이 주는 건 대체 왜였을까? 뭔가 정체불명의 국적 요리 같았어.
몇 숟가락 되지 않는 굴라시는 다 먹었고, 마카로니는 거의 다 남겼어.


북한식 순대를 먹고 싶어서 기다렸는데, 순대 준비 시간이 10분 이상 걸린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비빔국수를 주문했어. 면은 옥수수가루가 들어가서 그런지 쫀득쫀득, 꼬들꼬들했고 시간이 지났지만 불어 터지진 않았어. 그런데 양념이 이도저도 아닌 그냥 빨간 양념이었고, 닭가슴살은 퍽퍽 그 자체였어. 이렇게 파는 이유를 모르겠더라.


그 와중에 가장 맛있었던 건 일본의 오꼬노미야끼.
갈색의 녹진한 소스와 마요네즈의 조합이라면, 그냥 부침가루만 물에 개어 부쳐도 맛있지 않을까 싶어.
내용물은 조금 부족했지만, 그 조합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어.


콜롬비아 부스, Sony A7 R5 + 16-35mm f2.8 GM2

여러 나라들을 둘러보다 눈에 띄는 부스가 하나 있었어. 콜롬비아.

부스 앞에 전통의상 같은 걸 입은 여성분이 약간의 춤 비슷한 걸 추며 매장을 홍보하고 있었는데, 다른 나라들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어. 줄도 길었고.

무슨 음식을 팔고 있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줄 옆으로 다가가서 여성분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여쭤봤어.

그리고 한 장 촬영했지. 길거리에서 대충 찍은 사진 치고는 잘 나온 것 같아.


나는 아직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랑 맥주 한 캔을 사서 먹고 마셨어.
세계음식축제에서 편의점 음식으로 배를 채우다니... 좀 웃기지 않아?


백악 곡성

물 한 병을 챙겨서 두 번째 일정, "백악 곡성"으로 향했어. "백악 곡성"은 서울 한양도성길, 백악 구간 숙정문 근처에 있어.

출발지는 축제장이었고, 성북동 건너편 언덕 위에 있는 예쁜 북정마을로 향했어. 거기서 서울 한양도성길로 들어가서 산책하듯 걸었지. 길이 잘 정비돼 있어서 걷기 편하긴 했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자주 나왔어.

백악 곡성까지는 꽤 올라가야 했고. 아마 여기서부터 무릎에 무리가 가기 시작한 것 같아.


북정마을에서 도성길로 이어지는 길은 마치 비밀의 숲을 걷는 기분이었어. 사람도 거의 없고, 이런 길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서울 안에서도 이런 한적한 시골 같은 분위기의 마을이 있다는 게 놀라웠어.
솔직히, 이런 데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걷다 보니 풀 냄새, 꽃 향기가 같이 났어. 익숙한 향기였어. 봄날 자주 맡았던 그 향. 라일락. 그런데 지금 라일락 철은 지났을 텐데?
잎은 좀 작은 라일락처럼 생겼고, 꽃도 비슷했지만 조금 작았어. 진한 향이 코끝을 찌르는 걸 보면... 라일락이 맞는 것 같았지.


꽃 사진을 찍어서 친구한테 보냈어. 그냥 지인? 아니, 친구.

최근 글에서 지인이라고 썼다가 한 소리 들었거든. 친구 맞아. 지인이기도 하고, 친구가 더 맞는 표현이지.

톡방에 사진을 올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꽃 이름이 올라왔어. "병꽃나무"라고.

그렇게 믿었지. 그런데 집에 와서 다시 찾아보니 병꽃나무는 아니더라고. 산라일락으로 보였어. 확실하진 않지만, 그냥 그렇게 믿고 있어.


산라일락으로 추측되는 향기로운 꽃 나무, Sony A7R5 + 16-35mm f2.8 GM2


여기 주변에 꽃나무들이 참 많았어. 향기롭고, 해도 잘 들고, 적당한 그늘도 있어서… 맘에 드는 공간이었지.

산라일락이라 믿고 있는 꽃을 지나 조금 걷다 보니, 때죽나무 꽃이 송이송이 피어 있었어.
포도송이처럼 매달려 있었고, 바람이 불면 달랑달랑 흔들리는 모습이 너무 귀엽더라.

이 꽃도 몰라서 사진 찍어서 친구에게 보냈더니, 또 자동으로 이름이 떴지. "때죽나무." 근데 나는 "땟가죽나무"라고 부르고 싶어. 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그 공간과 여유로운 시간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머물렀어. 꽃도 보고, 나비도 보고, 벌도 보고, 새소리도 듣고... 그냥, 그 시간이 행복이었어. 별거 없는데도 좋았어.

하지만 거기서만 평화롭게 머물 순 없었지. 다시 발걸음을 옮겼어.

곡성. 그곳으로 가자. 물론, 스릴러 영화 ‘곡성’은 아님.


때죽나무 꽃, Sony A7R5 + 16-35mm f2.8 GM2


거꾸로 갈 뻔한 길... 마침내 백악 곡성

작년 여름, 비가 많이 내려서 서울 한양도성길 성벽이 많이 파손됐다고 하더라. 그래서 곳곳에서 성벽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일부 구간은 도성길이 아닌 우회로로 이어졌어.
난 이 길이 초행이었고, 곡성을 이미 지난 건지, 아직 더 가야 하는 건지 몰랐지. 결국, 이 길을 잘 아는 지인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봤어. “아직 한참 더 가야 하고, 숙정문 지나면 곧 나올 거야.”


와 진짜, 우회 길이 있다 보니까 갈림길에서 고민 중이었는데, 전화 안 했으면 반대로 갈 뻔했지 뭐야.

걷다 보니 되게 예쁜 청단풍과 홍단풍이 보였어. 잎사귀 위에 빛이 내려앉은 모습이 참 아름다웠지.
이런 장면은 안 찍을 수 없잖아. 찰칵! 찰칵!


청단풍과 홍단풍 (열매가 달린 단풍나무는 더 예쁘다), Sony A7R5 + 16-35mm f2.8 GM2


곡성에 닿다


이후의 길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식물은 보이지 않았어. 눈에 띄지 않았던 식물들아 미안해.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성문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어. 숙정문인지 아닌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냥 숙정문 같았어. 큰 문이면 숙정문이지, 뭐. 숙정문 앞에서 몇 장 사진을 찍고,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어.

생각보다 계단 경사가 가팔랐지. 천천히 숨을 고르며 올라 숙정문 위에 닿았고, 그 위에서 도성을 따라 걷다 보니 저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어.

스모그 낀 도심은 희뿌옇고 흐렸지만, 그 속에서 선명하게 솟아 있는 남산타워를 보니 마음이 탁 트이더라.
힘들어서였는지, 풍경 때문이었는지 자꾸 멈춰 서게 됐고, 그렇게 천천히, 그리고 천천히 걸어 "곡성"에 도착했지.


꽤 높았어.
곡성의 모서리 부분에 다다르자 살짝 무서운 느낌이 밀려왔지.
나는 높은 곳에 서 있는 것까진 괜찮은데, 발밑이 유리로 비치거나, 나무 틈 사이로 아래가 보이면 무섭더라고. 곡성 꼭대기의 그 모서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조여왔어. 그래도 애써 괜찮은 척했지.


멀리 바라보니, 그저 좋더라. 햇살도, 바람도, 시야 끝의 풍경도. 무릎은 아팠지만 마음은 괜찮았어. 아니, 오히려 가벼웠지.

사실 오늘 곡성에 온 건 한양도성길을 담고 싶어서였는데, 막상 사진에 담아보니 생각만큼 예쁘진 않았어.
그래서 도성길은 몇 장만 찍고, 그냥 걸었지. 걷고, 숨 쉬고, 아무 생각 없이 바람을 맞으며. 그게 오늘 가장 잘한 일이었어.


내 그림자, iPhone 16 Pro

풍경을 보며 한참 쉬다가 다시 내려가야 했어.
내려가는 길은 올라왔던 길과 거의 같았지.
북정마을이 아닌 삼청각 방향으로 빠지긴 했지만, 익숙한 경로였어.

그림자가 예뻐서 한참을 찍다가, 미끄러운 돌을 밟아 뒤로 넘어질 뻔했지. 다행히 옆에 있던 나무를 잡아서 크게 다치진 않았어.
앞에서 오던 할아버지께서 “조심하세요” 하고 말씀해 주셨지. 조심해야 해!


올라갈 때도, 내려올 때도 사진은 그리 많이 찍지 않았지만, 그중 마음에 드는 사진은 몇 장뿐이었어.
특히나 서울 한양도성길을 주제로 한 사진들은 더 아쉬웠지.
공기가 조금만 더 맑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쉬운 촬영이었어. 다음엔 다른 화각의 렌즈와 함께, 지금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이 길을 담아보고 싶더라.


오늘 글은 사진이 참 많아. 앞으로도 글보다 사진이 더 많을 날이 많을 테지만, 그래도 이번 글은, 지금껏 쓴 것 중 사진이 제일 많은 글이 아닐까 싶어.

그리고 확실한 건 글의 마무리는 여전히 어렵다는 걸. 다들 글을 어떻게 끝내지?

오늘도 그냥, 이렇게 그냥저냥 글을 마무리해 본다.


그래도 오늘 걷길 잘했어. 무릎이 아팠지만 아니 무릎이 아직 아프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숙정문과 성벽 사이로 보는 풍경, Sony A7R5 + 16-35mm f2.8 GM2


서울 한양도성길 백악구간, Sony A7R5 + 16-35mm f2.8 GM2


서울 한양도성길 백악구간 곡성에서 바라본 풍경, Sony A7R5 + 16-35mm f2.8 GM2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늘이 불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