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 은하수 촬영

"망이된 남자, 광해(光害)"

by 요요

사진 생활을 꽤 오래 해왔지만, 이상하게도 은하수를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었다. 강물에 비친 야경은 자주 찍었는데, 밤하늘의 별들은 늘 관심 밖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딱히 흥미가 없었달까.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처음으로, 은하수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나를 움직인 걸까?

"닷사이 23", 마셔 본 사케 중 가장 맛있었다.

지난 5월 1일, 한국관광사진기자단 3기 기자들 중 서울에 사는 사람들끼리 저녁 모임을 가졌다. 나를 포함해 다섯 명.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금세 친해졌다. 사진이라는 공통의 취미가 있으니, 이야기꽃도 자연스레 피었다.


그날 모임에서 사케를 한 병 가져온 분이 계셨다. 향도 좋고, 목 넘김도 부드러웠다. 그 사케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건, 그분의 사진이었다. 오로라와 은하수 전문 작가님인 그분의 사진을 보고 나서, 은하수가 멋지게 보였다. 흥미가 생겼다.


집에 돌아와서 은하수 사진을 더 찾아봤다. 그렇게 검색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왜 그런 거 있잖아. 홈쇼핑 보다 보면 처음엔 ‘에이, 저게 왜 필요해?’ 하다가 결국엔 결제 버튼 누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그런 거. 은하수 사진을 담고자 하는 내 마음이 딱 그랬다.


마침 5월 초 연휴도 있고, 서울이 아닌 지방(경북 안동, 의성)으로 갈 계획이 생겼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그제야 처음으로 은하수 촬영 방법을 하나둘 찾아보기 시작했다. 첫 은하수 촬영, 기대된다.


대충 찾아본 게 문제

그렇다. 문제는 '대충'이었다. 처음 하는 은하수 촬영인데, 나는 대충 알아보고 갔다.

일단 촬영 날짜는 5월 4일 일요일, 그리고 5일 월요일로 정했다.
일기예보를 봤더니, 4일 밤엔 구름이 좀 있었지만 자정이 지난 새벽엔 맑다고 했다.
5일도 비슷한 흐름. 다행히 촬영은 가능해 보였다.

달은 상현달. 완벽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1시~1시 반쯤 달이 지니까 그 뒤부터는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은하수 촬영은 늦은 밤, 깜깜한 하늘 아래에서 진행된다. 그래서 ISO는 높게, 조리개는 최대한 열어야 하고,
노출 시간은 대략 15~30초가 적당하다. 30초를 넘기면 별이 선을 그리기 시작해서, 은하수를 담기엔 좀 그렇다. 그리고 은하수는 넓은 하늘에 걸쳐 있으니, 렌즈는 24mm 이하의 광각이 좋다고 했다.

나에겐 16-35mm 광각 줌 렌즈가 있었고, 그걸로 찍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 여기까지만 알아봤다.


보통의 나였다면 세세하게 장소, 구도, 촬영 팁까지 모조리 정리했을 텐데 왠지 이번엔 조금 들떠 있었던 것 같다. '새로운 경험'이라는 생각에 심장이 먼저 반응했던 걸까.


아무튼 그렇게 대충 촬영 정보를 챙긴 채 5월 4일 자정 무렵, 촬영 장소로 향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라 포인트 찾는 것도 쉽지 않았고, 몇 컷 테스트 촬영을 하다가 겨우 달이 지고 난 뒤에야 제대로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망했다.


일단 뭐가 문제였는지. 망한 사진부터 보자.

뭐가 문제였는지, 딱 보인다
경북 안동시 와룡면, Sony A7 R5 + 16-35mm f2.8 GM2

뭐가 문제인지 보이나? 누가 봐도 보일 것이다.

은하수가 진하지 않고 어렴풋하게만 보인다. 누가 봐도 망한 사진.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닐 거다. 오른쪽 아래엔 뭔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게 바로 ‘광해’다. 빛공해. 밤하늘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도시의 불빛.


은하수를 찍으려면 하늘이 어두워야 한다. 그런데 이 ‘광해’ 때문에 하늘이 탁해지고, 별도, 은하수도 흐릿하게 묻혀버린다. 우리나라는 북반구에 위치해 있어서 은하수를 찍으려면 남쪽 하늘을 바라봐야 한다.

근데 문제는, 내가 간 그 장소의 남쪽에 안동시 중심부가 있었다는 거. 직선거리로 5~7km밖에 떨어지지 않았으니, 광해를 피할 수가 없었다.

보통 광해를 피하려면 남쪽 방향으로는 최소 20km는 떨어져야 한다던데...
아, 진짜 너무 아쉬웠다.
뭐랄까, 생각보다 단순한 실수인데, 왜 그걸 미리 확인 안 했을까 싶기도 하고. 조금만 더 꼼꼼했더라면.


평소엔 야경 사진을 잘 망치지 않는다. 노하우도 있고, 경험도 있으니까. 근데 이 사진은... 딱 봐도 아니다 싶었다. 마음에 안 들었다. ‘망! 했! 다!’는 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언젠가는 한 번쯤 이런 일이 있었겠지. 그게 오늘일 뿐이고, 오늘 미리 이렇게 망했기 때문에 앞으로 실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를 배우고, 처음이자 망한 은하수 촬영을 마무리했다.


다음날... 또 망했다.

첫날의 실패를 발판 삼아, 이번엔 더 철저히 준비했다. 광해를 피하기 위해 이번엔 직선거리로 20km 이상 떨어진 곳을 골랐다. 이번에도 사진을 보며 이야기해 볼게.

경북 의성군 "달빛공원", Sony A7 R5 + 16-35mm f2.8 GM2

경북 의성군, ‘달빛공원’. 그 이름처럼 운치도 있고, 뷰도 좋았다.


이번엔 사진 구도가 꽤 마음에 들었다. 은하수를 배경으로 전경이 잘 어우러져서, 사진에 입체감이 생겼다. 단조롭지 않고, 뭔가 이야기가 있는 느낌. ‘이번엔 괜찮을지도 몰라’ 살짝 기대했다.

하지만... 또 광해다.
그리고 아주 옅은 구름까지. 오늘도 망! 했! 다!


사진을 찍을 땐 몰랐다. 사진 왼쪽 아래에 이상한 불빛이 계속 들어왔다.
"못 보던 고층건물이 들어선 건가?"

"설마 아파트 단지?"
"근데 왜 빛이 이렇게 일직선으로 강하게 들어오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빛만 아니었어도, 이번엔 어느 정도 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산 아래쪽에 대형 공사 차량들이 있었고, 그 근처에서 무슨 작업을 하는지 엄청난 조명이 하늘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 진짜 허무했다.


두 날에 걸친 은하수 촬영을 마치고 나서 한 가지를 확실히 느꼈다.

은하수는 아무 때나 찍을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정말 많은 조건이 맞아야 한다.


1. 광해로부터 직선거리 최소 20km 이상 떨어져야 한다.

2. 달이 없어야 한다. 상현달, 하현달 이상이면 월몰 이후에도 하늘이 환하다.

3. 구름도 없어야 한다. 얇은 구름 한 줄로도 은하수가 묻힌다.

4. 안개도 없어야 한다. 습도 높은 날은 하늘이 뿌옇다.

5. 촬영지 주변에도 인공광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한민국은 대부분이 광해 지역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북반구에선 은하수가 잘 보이는 시기도 정해져 있다.
5월부터 9월 사이, 그 짧은 기간뿐이다.

결국, 은하수를 찍을 수 있는 날은 1년 중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마음만 먹는다고 해서 찍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은 우주가 나에게 은하수를 허락하지 않은 걸지도.
그래도 괜찮다. 다음번엔 조금 더 준비해서, 잘하면 되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빛 번진 필름처럼, 봄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