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열어보면 늘 무겁고 가득했습니다.
누가 보면 작은 보부상 같을 테니까요.
물티슈, 약봉투, 병원 진료표,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들,
가끔은 선생님께 드릴 작은 선물도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나’를 위한 것은 없었습니다.
나의 취향, 나의 여유, 나의 이름을 담은 물건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방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언제나 아이의 것이었고,
어느새 저는 내 인생에서도 자취를 감춘 사람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제 가방을 보며 “부지런하다, 열심히 산다”라고 말했지만
정작 그 안에서 저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병원 대기실.
순서를 기다리며 무심코 가방을 열었는데,
거기 가득한 건 아이의 삶뿐이었습니다.
문득 손이 멈췄습니다.
‘왜 내 것은 하나도 없을까.’
그 작은 깨달음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내 가방, 내 인생인데 왜 나는 이렇게 비어 있을까.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결심을 했습니다.
서점에서 책 한 권, 손에 꼭 맞는 작은 펜,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나를 위해 고른 립스틱 하나를 가방 속에 넣었습니다.
처음으로, 내 가방 안에 ‘나’를 위한 것을 넣었습니다.
가방은 여전히 무겁지만, 이제는 조금 다릅니다.
책이 있어 숨이 트이고, 작은 펜이 나를 불러내고,
립스틱 하나에 잊고 있던 색이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가방 속 작은 자리에서부터 나를 회복하려 합니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혹시 당신의 가방 속은 어떤가요?
오랫동안 밀어둔 ‘당신’이 그 안에 있나요?
아니라면, 오늘 그 안에 작은 당신을 하나 넣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