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또 다른 이름을 선물 받다
연말정산을 마무리하고 나서, 가방 속에 뒹굴거리던 서류들을 하나씩 꺼내 들었습니다.
늘 그렇듯 대충 정리하고 넘기려던 찰나, 손끝에 걸린 건 가족관계증명서였습니다.
만약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 문서에는 오직 제 이름 하나만 적혀 있었겠지요.
그런데 이제는, 제 이름 아래에 우리 아이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순간, 가슴 한켠이 뜨겁게 차올랐습니다. 저 혼자였던 이름 아래, 이제는 제가 지켜야 할 생명이 함께 있다는 것. 그 한 줄의 문장이, 제 인생의 모든 변화를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천천히 눈을 옮겨보니, 제 이름 옆에는 ‘모(母)’, 그 아래 아이 이름 옆에는 자(子)’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짧은 글자 두 개, 그러나 그 안엔 한 사람의 인생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제가 걸어온 길,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저를 모두 품고 있었습니다.
그 글자들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언젠가 저의 이름이 혼자 서 있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저 하나로 충분했던 세상이, 이제는 너를 품어야 완전해졌다는 걸,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모’와 ‘자’.
그 짧은 글자들이 말없이 속삭였습니다.
“너는 이제 누군가의 엄마야. 네 삶은 혼자가 아니야. 너의 이름은 누군가의 세상과 연결되어 있어.”
그때 깨달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예전의 ‘나’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누군가의 이름 아래 함께 적힌 존재로서, 제가 걸어온 시간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새기고 있었다는 걸요.
가방 속을 다시 열어보았습니다.
이젠 아기 때처럼 분유통이나 물티슈는 없지만, 대신 아이가 먹는 비상약,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 작은 핸드폰,
침을 자주 흘려 늘 챙겨 다니는 손수건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종종 ‘제가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가족관계증명서속 그 한 줄을 바라보며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라진 게 아니라, 너를 품으며 다시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예전엔 제 이름 하나만으로 충분했던 세상이, 이젠 너의 이름이 함께 있어야 완전해졌습니다.
그건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저의 인생이 새로 쓰인다는 뜻이었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은, 세상 가장 작지만 단단한 울타리였습니다. 그 이름을 품은 순간부터, 나는 나를 더 강하게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를 품고 살아간다는 건, 세상에 또 하나의 이름을 남기는 일입니다. 그 이름은 저를 닮았고, 저를 자라게 했습니다.
오늘도 가끔 가방을 열어 가족관계증명서를 다시 꺼내봅니다.
그 속엔 ‘조서연’이라는 이름과, 그 아래 따뜻하게 자리한 ‘우주원’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이름을 잇는 또 하나의 이름 바로 ‘엄마’, 저의 또 다른 나입니다.
- 아델린
♡함께 하는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