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를 다시 담는 법
처음 이 여정을 시작할 때, 제 가방은 늘 무겁고 가득했지만 정작 ‘저’는 없었습니다.
아이의 약봉투와 간식, 가족의 서류와 책임, 누군가의 기대와 눈치…
가방은 날마다 빽빽했지만 제 마음은 점점 비어 갔습니다.
때로는 참는 며느리로, 때로는 퇴근길 유리창 앞에서 초라함을 견디는 직장인으로,
저는 제 이름을 가방 바깥에 걸어둔 채 오래 걸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되었습니다.
버거웠던 말들, 뜻하지 않은 이별, 격리의 고요 같은 시간이
제 안의 ‘나’를 흔들었지만, 그 흔들림 덕분에 오히려 제가 저를 다시 찾게 되었다는 사실을요.
길을 되짚어보니, 제 가방은 언제나 누군가의 사랑으로 시작되었더군요.
어린이집 문 앞에서 엄마가 손에 쥐여 주던 첫 가방, 가족관계증명서 속 ‘모(母)’와 ‘자(子)’라는 두 글자,
그리고 “엄마의 사랑이 내 안에 자라 오늘 나는 또 하나의 사랑을 품었다”는 다짐까지.
저는 관계 속에서 자랐고, 책임 속에서 단단해졌으며,
고단한 일상 속에서 다시 저를 발견했습니다.
무게는 줄지 않았지만, 의미는 깊어졌습니다.
가방은 이제 짐의 상자가 아니라
사랑과 믿음, 그리고 제 삶의 이야기를 기억해 주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제 가방을 엽니다.
아이의 비상약과 손수건 옆에, 제 이름이 적힌 작은 노트 한 권,
나를 위한 펜 한 자루, 마음을 밝히는 문장 하나를 함께 넣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이면서도, 여전히 ‘저’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내일의 저는 또 다른 무게를 들겠지만,
그 안에는 더는 사라진 내가 아니라
다시 담긴 내가 있을 것입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의 가방 속에도
오랫동안 밀어둔 ‘당신’이 있다면,
오늘 아주 작은 당신을 하나 넣어 보시겠어요?
우리 각자의 가방이, 서로를 지탱하는 조용한 등불이 되기를요.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아이들이 자신만의 가방을 메고 세상으로 나아갈 때, 그 안에서 사랑의 시작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이 글들을 같이 할 수 있었던 나의 작가 친구들 덕분에
가방 속에 나를 돌아보며 내가 없다고 느끼던 모든 것들 속에 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하는 우리 작가님들 고맙습니다.
지혜여니 ,따름,다정한태쁘 ,김수다 ,바람꽃 ,아델린 ,한빛나, 새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