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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 Oct 16. 2024

브런치 인턴 작가가 되다

#불순한의도

사실 나는 글을 쓰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다.

어릴 적에는 나의 의견을 세상에 알리고픈 욕심이 있었던 것인지, 천성이 E여서인지 산문, 그 중에서도 논설문을 좋아했고 신문의 사설을 읽으면 속 시원한(?)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뉴스에, 국정감사에 나오는 그런 자극적이고 날것의 언어가 아니라 정제된 단어로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들이 멋져 보였다

(이건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운문의 멋을 알아버렸다...로 이야기가 흘러갔다면 멋있었겠지만

실은 그게 아니라,

학교 백일장이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렸다.

일찍 쓴 사람은 먼저 자유시간을 갖고 놀이기구를 마음껏 타라고 했다...(!)

어린 영혼에 그 유혹은 알라딘 속 아부 앞 바나나와 같았고

톰과제리  매 번 제리의 영혼을 훔치는 치즈 같았다.

다람쥐통과 바이킹을 타고자 하는 내 안의 욕망과

그래도 1년에 딱 한 번 있는, '공식적인' 낮 시간에 마음 놓고 글 쓰라고 풀어놓는 날인데, 이 기회에 허튼 소리 휘갈긴 종이로 화답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충돌했다.


그래서 산문이 아닌 시를 쓰기 시작했다.

산문은 원고지 쓰는 법이나 문단 나누는 규칙에라도 익숙했지, 난생 처음 써 보는 운문은 앞에 한 칸을 떼는 건지 세 칸을 떼는 것인지, 행과 행 사이 줄 띄우기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썼다.

다 쓰고 나니 주어진 분량을 늘 꽉 메우던 산문에 비해 이거 이렇게 여백이 많아도 되나 싶게 원고지가 남았다.

제출하면서 아쉬움도 남았다. 이 짧은 글로 과연 내 생각이 전달될 수 있을까, 원고지 규칙도 모르는 운문을 썼는데 이거 심사위원이 근본도 없는 놈이라고 곧장 탈락시키고 읽지조차 않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일.

후회는 다람쥐통까지 걸어가는 동안만이었다.

다람쥐통 2회, 바이킹 3회, 청룡열차 1회 순회하고 나니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내 첫 시인데' 싶을 정도로  신기하게 내가 쓴 글이 기억이 안 났다.

(역시 아이/청소년 시기는 노는 게 최고인 듯 하다.)


결국 내 운문쓰기의 여정은 천성적인 게으름과 어린이대공원, 더 자세히는 다람쥐통과 바이킹의 유혹에 홀랑 넘어간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거창하게 무슨 내가 시의 맛을 알고 그 심오함을 기특하게도 어린 나이에 느껴낸 훌륭한 청소년이어서가 아니라.


더 웃기는 것은, 저렇게 해서 탄생한 시가 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가 특이했던 것인지, 산문부는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의 형식으로 시상하였는데 운문부는 장원, 차상, 차하, 장려상의 형식으로 시상했다. 당시 나름 한자 교육을 받은 자였음에도 산문부의 상 체계를 벗어나 처음으로 내 손에 쥐어진 '차상'의 뜻이나 순위를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부끄럽게도, 집에 와서 부모님께 여쭈어 보고야 알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학교 백일장이 끝나고 전국 단위의 대회들이 열렸고, 누가 추천한 것인지 모르지만 학교 대표로 그 대회들에 보내짐(?)을 받기 시작했다. 학교 빼먹고 햇살을 온 얼굴에 끼얹으며 아침의 거리를 거니는 그 느낌을 이길 쾌감은 세상에 몇 없었으므로, 그 때마다 김 닐리리야 씨는 감사함에 전율하며 합법적 땡땡이를 즐겼다.

처음에는 셋씩 나가다가, 그 후에는 둘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주위를 둘러보니 혼자 앉아있었다.

그 모든 대회에 학교는 나를 운문부로 내보냈고,

유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나갔던 대회에서는 머리가 희끗희끗 하신 분들 틈에 자리를 깔고 어느 체육관에 앉아 있던 기억이 난다. 감사하게도 나는 그 마지막 대회까지, 학교에서 내보낸 모든 대회에서 상을 탔다. 실로 게으름이 낳은 최고의 우연적 아웃풋이 아니었을까 한다. 지금까지도 게으름뱅이가 쓴 글을 높이 평가해주신 누군지 모를 학교 선생님들과 각 대회 심사위원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브런치에서의 첫 글을 쓰려고 폰을 집어드니 이 생각이 먼저 나는 것은 언젠가부터 글로써 나의 생각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꽤 위험한 일이라는 걸 깨닫고 + 바쁜 현대사회에 멱살 잡혀 끌려가다 보니 본의 아닌 절필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니 언젠가부터는 글을 쓴다는 것이 퍽 두려워져 그 어떤 글도 쓰기를 망설이다 안 쓰기를 반복했던 탓이 아닐까 한다.


다시 글 쓸 용기를 내기 위해서 핑계가 필요했다.

나의 시에 대한 오랜 사랑도 결국은 내 안의 게으름뱅이와 우연의 합작으로 시작되었듯이

어느날 아침 운동 겸 걷다 마주친 브런치 팝업스토어를 보고 "이게 뭐야" 하고 들어갔다가 인턴 작가가 되어버린 우연,

"내친 김에 신분상승하려면 10월 27일까지 세 편의 자유주제 글을 쓰도록 하라"는 약간의 푸쉬,

그리고 그로부터 생겨난 불순한 의도, 

그것들의 합작이 나에게 그간 잊고 지내 온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돌려주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레 다시 펜을 (폰을^^) 들어 본다.


모나미 볼펜도 고맙고 세련된 마우스패드도 다 고마운데,

이 문을 다시 열어 준 브런치에 감사한다*.



(*브런치로부터 1원 한 장 받지 않은 순수 감정입니다. 브런치 집 딸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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