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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길 6

by gir

아이의 작은 발걸음이 문간방을 지나 마당으로 나왔다.

할머니는 마당 작은 평상에 미리 나와 앉아 계셨다. 아이를 바라보며 잠시 미소를 지었지만 말없이

일어나 아이와 집을 나섰다.

집 앞 작은 골목 아침햇살은 골목 사이로 스며들며 아이의 작은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바람에 실려오는 풀향기가 어제저녁과 다르게 마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집을 나서고 큰길로 나와 지하철로 향하는 아이와 할머니는 며칠 전 새롭게 연 빵집에서 나는 빵 굽는 향기에

빵집을 힐긋 바라보며 여전히 말없이 걸었다.

보도블록 위로 햇살이 반짝였다. 아이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지하철로 향했다.

지하철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아이를 반겼다.

개찰구 앞에서 아이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지하철이 들어오는 역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승강장 벽에 붙은 색색의 광고포스터가 화려하게 걸려 있었지만 아이의 시선은 사람들의 발과 손에 머물렀다.

어른들의 검은 구두는 마치 개미들이 줄지어 거는 것처럼 보였다.

노란 안전선 밖으로 길게 줄은선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는 어제 학교에 가서 만난 친구를 생각했다.

오늘도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열차가 들어오며 시원한 바람에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만원 지하철은 여전히 아이를 긴장하게 했다.

아이는 재빨리 사람들 사이에서 출입문쪽 세로로 된 손잡이를 잡으며 작은 몸으로 마치 나무에 애초롭게 매달려 있는 잎새 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지하철을 빠져나와 제법 따듯해진 아침 공기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벚꽃 잎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반짝였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출근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얼굴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으며 걷고 있었다.

교문을 지나고 줄지어 학교로 올라가는 아이들은 삼삼오오 친구들과 떠들며 신나 보였다. 하지만 아이는 혼자였다. 그때였다 숨넘어갈듯한 목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그 친구 시영이었다. 아이눈은 반짝였지만 쉽사리 말은 나오지 않았다.

시영이는 아이 팔짱을 끼고는 여전히 숨이 찬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했다. " 어제 잘 들어갔어? 엄마한테 혼나지 않았어? 지하철 타고 학교에 왔어??" 쉼 없이 시영이는 아이가 대답하기도 전에 다른 이야기를 쏟아 냈다. 시영이는 밝고 수다스러운 아이였다.

"응... 혼나지 않았어..." 아이는 시영이가 숨을 고르며 운동장 앞 태극기 앞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할 때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영이는 아이에게 팔짱을 끼우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향했다. 산새소리가 유난히 듣기 좋은 날이다.

실내화로 갈아 싣고 신발주머니를 달랑달랑 들고 1학년 6반 교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간다.

건물 계단에도 노란 주번 띠를 단 5~6학년 언니 오빠들이 중간중간 서서 아이들이 계단에서 뒤지 않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 야 박시영!!!" 뒤를 돌아보니 볼이 터질 것 같이 왕사탕을 입에 문 같은 반 홍균이가 나무바닥 복도에서

큰 북소리를 내며 뛰어 온다.

"이거 놓고 갔다고 너네 엄마가 너 가져다주라고 하셨어" 홍균이 손에는 필통이 들려 있었다.

시영이는 홍균이네 아랫집에 산다고 했다. 국민학교 6년 동안 홍균이와 시영이 주희는 삼총사로 단짝 친구가 되어 함께 추억을 그렸다.

교실에 들어서 창가 쪽 자리에 앉은 시영이는 산그림자 아래 새들이 새싹이 돗는 나뭇가지에서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 이리저리 옮겨 나는 것을 보았다. 교실 창문으로 풀향기 품고 봄이 들어온다.



여자는 사무실 한편에서 오늘 보내야 할 우편주소를 타이핑 치고 있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얼굴에 꽃이 피었네...."바쁘게 움직이는 여자를 보고 주관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출판사는 입구에 들어서면 세월의 빛바랜 갈색 가죽 소파와 한켠 작은 협탁에 종이컵이나 믹스커피, 녹차가 가지런여 놓여 있고 입구 옆쪽 나무 문이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입구 쪽 문은 주관과 부주관 함께 쓰는 사무실이 있고 안쪽 나무 문은 출판사 대표 사무실이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대표는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인물들을 재미있게 그리는 책을 쓰고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하루 종일 타자 치는 소리가 들리고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오늘 오전에 우편 업무만 빨리 처리하고 조퇴를 한다. 아이 학교에 마중을 나갈 생각이다.

입학식에도 함께 하지 못해 미안했던 여자는 정말로 얼굴에 환하게 핑크빛 꽃을 활짝 피웠다.

학기 초라 1학년 아이들은 12시면 하교를 한다.

타이핑 친 주소를 트린트하고 노란 서류 봉투에 오려 붙이고 서류봉투에 책을 넣고 다시 봉투에 풀을 바르고 를 반복했다. 우편량이 많을 때는 우편배달 부가 오후에 와서 직접 가져간다.

여자는 빠르게 우편물을 정리하고 이번에 새롭게 출간되는 시집 표지 샘플을 받으러 홍대 디자인 사무실에

갔다가 바로 퇴근을 하기로 했다.

여자는 콧노래가 저도 모르게 나왔다. 그런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은 주관은 출판사 입구 탕비실로 조용히 나와 믹스커피 한잔을 마시며 피죽피죽 나오는 웃음에 주관 얼굴에도 봄꽃이 피었다.

인사를 하고 나온 여자는 출판사를 빠져나오는 골목길 담벼락 초록 잎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며 여자와 함께

춤을 추었다. 그래 마치 여자는 덩실덩실 춤을 추듯 걸었다.

온 세상이 춤을 추는 것만 같다. 반짝이는 아스팔트 위로 달리는 버스, 작은 손수레를 끓고 지나가는 할머니, 담장 위에서 나른한 오후를 보내는 고양이... 여자는 봄햇살에 발그레 해진 얼굴로 버스 타고 홍대 디자인 사무실에서 책 표지 디자인이 들어있는 노란 서류 봉투를 받아 들고 빠르게 지하철을 타고 무악재 역으로 출발했다. 혹시나 차가 밀려 늦을까 싶어 지하철을 선택한 것이다.지하철을 빠져나와 아이가 늘 등교하는 학교 가는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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