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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선물 앞에서...

" 감사는 쉬웠지만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by gir

우리 집에 쌀과 고기, 생선, 야채가 배달되어 왔다.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업체에 전화를 걸어 보니 그저 “고객님 맞으시죠? 받으시면 됩니다.”라는 말뿐이었다.

처음엔 감사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 같아 마음이 따뜻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따뜻함이 묘하게 불편함으로 변했다.

누군가 내 어려움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마음을 흔들었다.
그건 감사와 다르게, 마치 내 안의 상처가 조용히 드러난 기분이었다.


나는 어릴 적 가난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동정 섞인 선의’가
때로는 위로보다 상처가 된다는 걸 안다.
“불쌍하다.” 그 말이 아니어도,
그런 눈빛과 그 미묘한 숨결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어제 교회를 다녀오며 생각했다.
이건 누군가의 동정이 아니라, 아마도 진심이었겠지.
그렇지만 그 ‘진심’조차 받아들이는 게
이상하게 어려운 밤이었다.

나는 감사하다. 그 마음도 알고 있다.
그런데… 마음 한쪽은 여전히 아리다.

아마도 그건, 누군가의 선물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아직 아물지 않은 시간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리고 누군가의 선의를
상처 대신 따뜻함으로 기억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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