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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거리 노인

5화

by gir

그날 밤,
그녀는 빛의 구슬을 품은 채 잠들지 못했다.
구슬은 온기가 있었고,
마치 심장이 뛰는 듯한 리듬으로 빛을 냈다.

새벽녘,
공장 뒤편 골목에서 낮게 울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가자
희미한 불빛 아래 작은 포장마차가 있었다.
철제 의자에 앉은 노인이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팔지 않았다.
대신, 그의 주위엔
다른 영혼들이 남기고 간 빛의 잔재들이 흩어져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구먼.” 노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여기선 다 그런가 봐요.
다들 나를 모르는 얼굴처럼 봐요.”

“그건 당연하지. 여긴 ‘누군가였던 자들’이 모인 곳이니까.”
노인이 피식 웃었다. 그녀는 그 앞에 앉았다.

노인은 허공을 더듬듯 손을 내밀더니
그녀가 품고 있던 구슬을 향해 말했다.

“그건 네 게 아니야.”

“예?”

“그건 위에서 떨어진 빛이지. 하늘의 자들이 남긴 조각.
여기 사는 우리가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녀는 본능적으로 구슬을 감쌌다.
“그럼 돌려줘야 하나요?”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그건 네 빛이야. 누군가가 널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지.”

그 말에 여자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노인은 손끝으로 허공을 그었다.
그 순간, 어둠이 물결처럼 흔들리더니 위쪽 하늘이 잠시 열렸다.

거기엔 빛의 도시가 있었다.

“저기 사는 자들은 풍요롭지. 먹지 않아도 되고, 일하지 않아도 되고,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환하게 빛나지.”

“그럼 왜… 전 여기에 있는 걸까요?”

“그건 빛이 정한 게 아니야.”
노인이 천천히 웃었다.
“그건 네가 네 삶에서 쌓은 무게야.
네 마음이 만든 자리를, 빛은 그저 비추는 거야.”

“무게요?”

“살아 있을 때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두고 왔느냐가 이곳을 정하는 법이지.” 그녀의 눈이 떨렸다.

노인은 그 눈빛을 오래 바라보다가 조용히 덧붙였다.

“하늘의 빛은 단지 밝을 뿐, 따뜻하진 않아.
그건 네가 살아온 세상과 똑같지.” 잠시 바람이 불었다.

빛의 먼지들이 허공에서 춤추었다.

“기억해라.” 노인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 세계에서 진짜 따뜻한 건,
늘 아래로 떨어지는 빛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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