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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지 Sep 07. 2024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

사랑의 할당량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다고들 한다. 콩깍지가 벗겨지기까지 짧으면 100일, 길면 3년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고 사랑하는 감정은 1년이 지날수록 50%씩 줄어든다고 한다. 반면에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일흔이 넘은 부부가 알콩달콩 서로 아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방송이라 과장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 부모님만 보더라도 결혼하신 지 대략 30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두 분이서 자주 시간을 보내시고 매일 늦게까지 깔깔거리다가 주무시고는 한다.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 없어도 두 분의 깊고 단단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나만 해도 그렇다. 연인 간의 사랑을 차치하고서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 생기면 그거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 생기면 하루 세끼를 그 음식으로 채우기도 하고, 새로운 취미가 생기면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하고 싶은 만큼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5년 전에 그렇게 좋아해서 매일 만들어 먹었던 파스타를 지금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고, 종이만 있으면 그림을 그릴 정도로 좋아했던 그림도 손 뗀 지 오래다. 그럼 나에게 파스타와 그림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폐기되는 상품처럼 쓸쓸하게 끝나버리는 사랑인 건가 싶었다.


그러다 요즘은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파스타와 그림에 대한 나의 사랑은 유통기한이 지나서가 아니라 할당량이 끝나버린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좋아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끝나버린 게 아니라 너무 거기에만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쉬이 마음이 식어버린 거다. 아무리 좋아하던 음식이어도 하루 세끼로 먹지 않고 일주일에 한두 번만 먹었더라면, 그림을 밤새서 그리지 않고 휴일에만 즐겼더라면 충분히 지금까지도 좋아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나 음식이 아니더라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고 친구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어야 한다. 물론 누구나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면 서로의 모든 걸 알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게 일반적인 마음이긴 하다. 그래도 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항상 어느 정도의 거리를 조정하려 했던 것 같다. 너무 가까워지고 나면 보고 싶지 않아도 각자가 숨기고 싶은 추악한 모습을 하나쯤은 들키게 되기 마련이다. 여기서 추악한 모습은 각자의 치부라기보다는 '이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는 사이'니까 전보다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거나 편하다는 이유로 내 감정의 짐을 모두 상대에게 실어버리는 것 등이 예시가 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거리는 서로를 존중할 수 있게 해 주면서 각자에게 본인을 돌아볼 수 있는 틈을 준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오래 가져가고 싶어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물론 가족이나 연인, 친구, 취미 모두 각자의 적정한 거리는 다를 수 있다. 가족과 친구와의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고, 친구와 연인 사이의 깊이 또한 다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여유공간을 주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계를 이어가다 보면 사랑의 유효기간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결핍에서 온다는 말처럼, 어느 정도의 결핍이 우리의 사랑을 영원하게 해 준다.

서로가 편안할 수 있는 거리에서 사랑을 한다면,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결핍이 존재한다면 사랑에 대한 할당량은 금세 소모되지 않을 거라는 거다.


많이 사랑할수록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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